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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달거리’ 공연 나선 가수 김원중씨
(광주매일 2017.05.31 )

상식 밖의 공연 빵을 만들고, 평화를 만들다
(<출처> 글: 이계양 / http://cafe.daum.net/hahaca 하하문화센터 )

[블로그]2016년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앨범 (2016.5월~12월)
([출처]이문창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

[블로그]2017년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리셉션 (2017.5월~12월)
([출처]이문창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

[블로그] 내 오지랖의 끝은 어디인가?(2017.6.26.)
([출처]나의 하늘정원 / 하늘타리 )

[블로그]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현장 스케치(2017.08.02.)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청장 최영호 )

[카페]김원중의 달거리 바닥공연사진 영상 다수(2017.06.28.~12.)
([출처] Voo Doo 바닥프로젝트 )

[카페]2017빵만드는공연 김원중의 달거리...팝페라 그룹 ‘빅맨싱어즈’(2017.9.26.)
([출처]예기와의 만남(공개편지) /이름 없는 공연 )

[인디카 홈]가수 김원중 (2017.12.26.)
([출처] 민이맘 /자연을 사랑하는 모임 인디카 )

[블러그]김원중의 달거리 제 90회 공연 (2017.05.30.)
([출처]estrone/ 나의 포토이야기 )

[안도현의 사람]5월을 노래하는 가수 김원중
(경향신문 2016.05.19 )

'김원중의 달거리-빵 공연' 올해도 계속
(무등일보 2016.6.07 )

무등칼럼- 숫자놀음, 그 끝이 궁금하다
(무등일보 2016.9.23 )

[수필]「민중의 노래」- 이대 동창문인회
( 2016.11.07 )

[블로그]2016년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앨범 (2016. 5월~12월)
([출처]이문창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

[블로그]2016년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리셉션 (2016. 5월~12월)
([출처]이문창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

[블로그]84번째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출처] 보고..듣고..읽다 ‘오늘이 좋다’ 2016.7.25 )

[블러그]이 가을 위로가 된다. 한계령
([출처] 나의 하는 정원 / 한울타리 2016.10.31 )

[카페]김원중 달거리 공연- 주제 '자유'
([출처] 하하문화센터 2016.12.30 )

광주가 있는 한, 통일되기 전까지
(광주매일 2015.6.16 )

온정 모아 ‘통일빵’ 만드는 광주 문화·예술 집합체
(광주매일 2015.11.8 )

광주 대표 콜라보 공연 김원중 달거리 올해도
(무등일보 2015.6.17 )

“죽는 날까지 평화 위해 노래 할래요”
(광주매일 2015.11.8 )

세월호 가족이 부르고 관객들과 함께 운 노래 ‘약속해’
(민중의 소리 2015.12.1 )

[블로그]2015년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앨범
([출처]이문창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2015.6.30 )

[블로그]채은옥의 빗물! 7월 김원중의 달거리
([출처]‘가끔은 해찰도 하지, 그러다 샛길로 빠지기도 하고’ 2015.7.28 )

[블러그]‘광주문화’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출처]즐겨라 광주 광주문화재단공식블로그 광주랑 2015.8.7. )

[블러그]누가 새 대가리라 하는가- 8월 김원중의 달거리'
([출처] 나의 하는 정원 / 하늘타리 2015.9.3 )

[블러그]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출처 ]Carpedium / 내 발길이 닿은 곳 2015.9.19 )

[블러그]4.16과 김원중의 달거리
([출처]해솔맘 천사들의 놀이터 광주.전남 2015.11.30 )

[블러그]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사진으로 합창단 활동
([출처] 416 합창단 2015.12.30 )

철조망 대신 목련꽃 ♪♬ 통일 노래한 김원중
(전남일보 2014.4.1 )

컬쳐&피플/“달거리 공연은 ‘예향 광주’의 집합체”
(광주일보 2014.4.30 )

[블로그]가수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세월호 참사 추모공연
([블로그]‘토마스 길에서 길을 묻다’ 2014.5.7 )

[블로그]2104문화예술공간프로젝트지원사업'김원중의 달거리'
([광주문화재단블로그] 2014.5.27 )

[블로그]빛고을시민문화관빵만드는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블로그]티모시의 소소한 공간 2014.8.1 )

[블러그]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하는 광주의3대 열린음악회
([블러그]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2014.10.9 )

콜라보, 문화예술 핫 트랜드로
(무등일보 2014.10.10 )

[블러그]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60만번의 트라이'
([블러그]'Simpro의 반백년이야기' 2014.10.17 )

[블러그]김원중의 달거리 11월 공연 진선미 의원과 함께하는 '동행'
([블러그] ‘진선미의 국회소식’ 2014.11.24 )

칼럼 아침시평-문화송년회 어때요
(무등일보 2014.12.02 )

[발행]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광주견문록
( 2014.12 )

김원중의 달거리
(월간 '예향' 5월호 2013.04.25 )

오월 광주를 노래로…‘민중 대중가요’ 전국에 뿌리다
(한겨레 2013.6.24 )

[미술 속 세상]존 콜리에의 ‘레이디 고다이버’
(광주드림 2013.6.24 )

"폭염 속에도 바람은 있다"
(무등일보 2013.07.31 )

다 다른 우리들 모여서 평화 한그릇
(전라도닷컴 2013.8.16 )

김원중의 달거리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창' 26호 2013.10.04 )

“광주 5·18 정신 담아 평양서 공연하는게 꿈”
(전남매일 2013.11.15 )

'바위섬’처럼 광주다운 무대 만들어가는 가수 김원중
(월간 예향12월호 )

[공연 칼럼]기자수첩-김원중 달거리 공연 영원하길
(전남매일 2012.03.19 )

[3월 공연리뷰](월간 광주아트가이드 4월호)
( 2012.04 )

[4월 공연리뷰](광주은행사보- 향기 있는 나눔 5월호.‘김원중의 달거리’)
( 2012.05 )

[5월 공연리뷰]붉은 장미 한 송이...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오마이뉴스 2012.05.22 )

[6월 공연·인터뷰]아시아문화중심도시 취재기대학생기자단
( 2012.06.29 )

[7월 공연리뷰]'작가·화가·음악 한마당'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현장
(무등일보 2012.08.01 )

[8월 공연·인터뷰]문화나눔 확산 앞장서는 김원중씨
(무등일보 2012.08.01 )

[9월 공연·인터뷰] ‘가수 김원중 인터뷰’
(기쁜소식 선교회 2012.10.28 )

[11월 공연리뷰]오지 않은 첫눈을 보다!
(광주드림 2012.11.28 )

[12월 공연·인터뷰]"노래로 광주의 상처 보듬고 싶었다"
(컬쳐인 2012.12.13 )

[공연후기]‘빵 만드는 향기 2012’정기간행물12월호 빵본부
( 2012.12 )

[공연칼럼] 아침시평- 광주브랜드공연의 자존심
(무등일보2011.02.15)

[공연·인터뷰] ‘바위섬’닮은 가객 김·원·중
(e빛고을광주2011.04.15)

[4월 공연리뷰] 북녘어린이를 돕기 위한 '빵 만드는 공연'
(오마이뉴스2011.04.26)

[6월 공연리뷰] 가장 광주적인 것 중의 하나...
([웹진 아르코7월]2011.07.18)

[공연·인터뷰] 예술가들의 말 말 말 '김원중'
(대동문화 11·12월호)

[공연 후기] ‘빵이 열리는 공연’
(그래 빵이 종겠어-도서출판 이즘(2011.12.)

[3월공연리뷰] 산란하는 ‘달빛’을 보다
[광주드림] (2010.3.17)
[3월공연리뷰] '직녀에게 김원중'이 달거리를 다시 하는 까닭
[오마이] (2010.3.22)
[4월공연리뷰] 행복한 하루, 행복한 사람 김원중을 생각하며...
[주권닷컴] (2010.4.21)
[5월공연리뷰] 달빛, 혁명 그리고 울음들
[광주드림] (2010.5.18)
[6월공연리뷰] 김원중의 `달거리’ 네 번째 공연을 보고
[광주드림] (2010.6.23)
[7월공연리뷰] 김원중의달거리 다섯번째 공연을 보고
[광주드림] (2010.7.21)
[8월공연리뷰] 김원중의 ‘달거리’ 여섯 번째 공연
2010.8.17
[11월공연리뷰] 김원중의 ‘달거리’ 아홉 번째
(2010.11.19)
[12월공연리뷰]‘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2010,12.24)

[12월공연리뷰] 다채로운 문화를 융합하는 힘
(2010,12.24)

 

[안도현의 사람]5월을 노래하는 가수 김원중


안도현 ㅣ 우석대 교수·시인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신군부의 권력장악 음모를 반대하는 집회가 학교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도 시위에 꾸준히 참여했다.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그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던 섬약한 청년일 뿐이었다.

5월17일, 정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모든 대학 캠퍼스는 장갑차를 앞세운 계엄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전남대 학생들은 학교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정문에서 완전무장한 군인들에게 막혔다. M16 소총 끝에는 대검이 번뜩였다. 학생들은 군인들과 맨손으로 투석전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김원중은 전남도청에서 가까운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다시 충장로와 금남로로 나갔다. 군인들은 미식축구선수 같은 철망이 달린 철모를 쓰고 마구잡이로 곤봉을 휘둘렀다. 시민과 학생들이 여기저기 고꾸라지면서 피를 흘렸다. 짐승을 때려잡는 장면 같았다. 김원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는 집으로 가지 않고 방림동 외가로 향했다. 그쪽으로 몸을 피하는 동안에도 뒤통수를 자꾸 만졌다. 김원중은 외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광주항쟁이 끝날 때까지 열흘 동안 숨어 지냈다.


그사이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금남로로 나갔다가 군인들에게 붙잡혔다. 대학생 아들을 둔 것 같다는 이유로 아스팔트 도로 위에 무릎을 꿇고 갖은 모욕을 당해야 했다. 외사촌 형은 당구장에서 군인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그가 아는 어떤 가수는 복부에 총알이 스치고 지나가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걸 스스로 손으로 집어넣고 기어 나와 겨우 살아남았다고 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다치고 죽었다는 끔찍한 소식을 듣는 일이 그의 일상이 되었다. 혼자만 비겁하게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이 그를 괴롭혔다. 견딜 수 없었다. 김원중은 입대를 선택했다.


1983년 제대하고 나서는 사직공원 오르막길에 있는 ‘크라운 광장’이라는 생맥줏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거기서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면서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 운명처럼 만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MBC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쟁쟁한 젊은 음악인들이었다. 제1회 때 동상을 받은 ‘소리모아’ 멤버 박문옥, 제2회 때 은상을 받은 김정식, 그리고 ‘영랑과 강진’이라는 곡으로 제3회 때 역시 은상을 받은 김종률도 단골손님이었다. 나중에 ‘바위섬’을 작곡하게 되는 배창희도 자주 출몰했다. 이들은 광주의 참혹하고 어처구니없는 기억을 노래로 꾹꾹 눌러두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놀라운 이야기를 했어요. 왜 음반을 서울에서만 만드는 거지? 우리도 한번 만들어 보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대한민국 가요사에서 최초로 지역에서 기획·제작된 옴니버스 음반이 1983년에 나오게 되는데 그게 ‘예향의 젊은 선율’이었어요.” 이 음반에 김원중의 히트곡 ‘바위섬’이 들어가게 된다. 이 노래는 방송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원중이 이렇게 잘나가던 가수에서 멀어지게 된 것은 1987년 첫 번째 독집음반에 넣은 ‘직녀에게’ 때문이었다. 문병란 시인의 시에 박문옥이 곡을 붙인 이 노래가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는 이유로 KBS에서는 방송 금지 처분을 내렸다. 가수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김원중은 방송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광주’가 있었다. 그는 서울 대신에 광주를 택했고, 방송무대 대신에 거리로 무대를 옮기기로 작정했다. 1989년, 백골단이라고 부르던 경찰특공대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때였다. 5월이 되자 그는 기타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충장로우체국 뒤 골목길, 상추튀김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의 거리공연에 호응하는 시민들이 백골단의 진입을 몸으로 막아줬다. 그렇게 한 달간 매일 공연을 했는데, 늘 일이백 명이 들어찬 골목은 통행이 마비될 정도였다.


이 공연을 본 가톨릭 광주대교구 신부들이 금남로 가톨릭센터 로비에서 5월 추모공연을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1990년 이후 14년간 이 공연이 해마다 이어졌다. 이 공연은 광주의 5월을 전국으로 알리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1997년에 망월동 묘역에서 49재의 의미를 담아 49일간 저녁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묘역을 향해 혼자 노래를 부르며 영령들을 위로하고자 했지요. 그런데 49일 동안 단 하루도 비가 오지 않는 거예요. 비가 오면 그 핑계로 하루 쉴 수도 있었는데…. 그때 생각했죠. 아, 5월 영령들은 노래 듣는 걸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지금은 농담을 섞어 이렇게도 말하지만 어느새 김원중의 나이는 50대 후반으로 들어섰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한 발자국 비켜 서 있기는 싫다. 그는 여전히 뜨겁다. 세상의 모순이 드러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가수다. 그렇다고 ‘민중가수’라는 카테고리 안에 자신을 가두는 것은 거부한다.


김원중은 2003년부터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빵공장을 지어주자는 운동에 손을 보태기고 있다. 처음에는 혼자서 하다가 콘텐츠가 바닥이 나고 피로가 쌓여 중단했다. 그런 그를 다시 무대로 불러 세운 것은 2010년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의 대결 구도가
냉전시대로 회귀할 때였다. 이번에는 여러 장르의 예술인들을 초청해 장기전에 대비했다. 여기서 모금한 1억여원을 빵공장 사업에 기부하기도 했다.


내가 알기로 김원중은 인간관계나 금전적인 문제로 사고 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술도 거의 입에 대지 못한다. 달콤한 연애에 빠졌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아직 그는 미혼이다. 그렇다고 그를 지나치게 ‘바른 생활 사나이’라고 말하면 좋아하지는 않겠지? 취미가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손님접대!”

좋은 음식점과 술집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 술을 마시지 않아도 얼마든지 취한 사람처럼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고객만족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그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노래를 불러주었다.

“155마일 철조망이/ 꽃나무였으면 좋겠어/ 꽃 한 송이 들고 경계를 넘어가는 거야 (중략) 아주 오래전에 만난 것만 같은/ 나타샤와 함께 춤을 추고/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속에서/ 불어온 바람과 노래하고”

김원중 데뷔 30주년 기념 자작곡 앨범 ‘걸어온 길, 걸어갈 길’에 들어 있는 노래였다.

ⓒ 경향신문

 
 

'김원중의 달거리-빵 공연' 올해도 계속

지난달 30일 '임~ 행진곡' 부르며 첫 콘서트
'통일' 관련한 전국 유일 정기 무대… 9년째



'빵만드는 공연-김원중의 달거리'가 지난달 30일 올해 첫 무대를 시작했다. 사진은 가수 김원중이 시민, 출연진들과 촛불을 들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열창하고 있는 모습.


지난달 30일 광주 남구 음악창작소 1층 피크뮤직홀.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영화 '레 미제라블'의 스틸컷을 배경으로 촛불을 든 가수와 시민들이 무대에 올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어느새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도 하나둘 일어나 목청껏 소리 높여 함께 노래를 부르며 대미를 장식했다.

5월의 끝자락, 마치 떠나는 '오월 광주'를 상징하는 듯한 이 무대는 '김원중의 달거리'의 올해 첫 행사다.

가수 김원중이 꾸준히 마련해 온 상설콘서트가 예년과 달리 다소 늦은 5월에 첫 무대를 열었다.

'김원중의 달거리'에는 '빵만드는 공연'이라는 타이틀이 늘 함께 한다.

이미 알려진대로 지금은 가동을 잠시 멈춘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을 후원하기 위한 행사다. 국내에서 '통일'과 관련해 정기적으로 마련되는 유일한 행사이기도 하다.

2003년 시작해 올해로 14년째로 중간 휴식기간을 빼년 꼬박 9년을 이어오고 있다.

행사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열려 있다.

콘서트가 끝나고 나가는 길에 입구에 자리한 모금함에 원하는 만큼 기부를 받고 있다. 모금함에 담겨진 것은 고스란히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으로 보내진다. 지금까지 1억여원에 가까운 돈이 모여 보내졌다.

가수 김원중의 이름을 내걸었지만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만들어온 무대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참여가 부쩍 늘었다.

이 날도 퓨전국악그룹인 '프로젝트 앙상블-련', 신세대 아날로그 록 대중음악 씬에 새바람을 몰고 있는 ‘바닥프로젝트’, 2015 광주음악창작소 인큐베이팅 뮤지션이 출연해 흥을 돋우었다. 특히 초대손님으로 자리한 15살의 차세대 기타리스트 김영소의 공연에서는 신진 뮤지션들을 위한 김원중의 마음이 느껴진다.

또 늘 빠지지 않는 샌드애니메이션 작가 주홍 그리고 올해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살림꾼 강위원이 구수한 진행으로 재미를 선사했다.

이 날 무대 끝머리에 등장한 김원중은 "여러 이유로 올 한해는 달거리 공연을 쉬고 싶었다"면서도 "이 땅에 뿌리는 평화의 씨앗이 꽃피는 날이 분명히 올 거라는 확인해 공연을 다시 해야겠다 마음먹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손 놓고 있다 다시 시작하는 공연이라 3,4월은 준비기간이라 생각하고 5월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그의 말과 공연이 끝난 후에도 마지막까지 손님들을 배웅하는 모습에서 무던히도 '달거리'를 이어오며 켜켜이 쌓여있을 고단함과 애정이 묻어났다.

한편 '김원중의 달거리'는 올해부터는 장소를 바꿔 사직공원에 자리한 광주음악산업진흥센터 피크뮤직홀(옛 KBS)에서 매월 넷재주 월요일 관객을 만난다.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살림꾼 강위원의 사회로 가수 김원중의 노래와 신나면서도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일렉트릭 사운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무대를 만들어가는 느티나무밴드, 프롤로그, 샌드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미술문화를 기획하는 화가 주홍, 퓨전국악 밴드 프로젝트 앙상블 ‘련’, 아카펠라 그룹 The Present, 바닥프로젝트, 우물안개구리, 2015 광주음악창작소 인큐베이팅 뮤지션, 사진가 리일천 등이 함께 한다. 입장료는 없으며, 공연 후 모금함에 정성을 담으면 된다.


이윤주기자 zmd@chol.com

 
 

무등칼럼- 숫자놀음, 그 끝이 궁금하다

"올해는 행사에 사람들이 좀 늘어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최근 만난 한 행사 관계자의 토로다. 되묻지 않아도 그가 걱정하는 것이 짐작이 됐다. 순수 민간자본으로 치르는 행사가 전무하다시피한 상황인지라 당연히 예산을 배정해주는 기관들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그 순간 문득 언제까지 매년 행사에 참가하는 집객수가 늘어야할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해마다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걱정이 태산인데, 해를 거듭할수록 전국 방방곡곡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축제와 행사는 어찌 그리 방문객들의 숫자가 늘어나는지 '미스테리'하다.

참가자가 늘었다고 예산도 같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중앙부처는 물론 지자체들도 '예산난'을 이유로 매년 지원금을 10% 삭감하는 것은 마치 관례처럼 돼 버렸다.

인구도 줄고 지원금도 줄이는데 참가자수는 늘어야한다는 논리의 근거는 무엇일까.

숫자에 대한 의문은 또 있다.

지난 3월 마지막 월요일, 광주음악산업진흥센터 피크뮤직홀에서 열린 올해 첫 '김원중의 달거리'를 보러갔다 "올해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달거리'를 쉬려다 다시 시작하게 됐다"는 가수 김원중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다.

'김원중의 달거리'는 지난 2003년 시작돼 올해로 13년째를 맞은 광주의 대표 상설공연이다. 오랜 세월 여러 곳에서 공연은 이어져왔고 최근 몇년간은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어김없이 매월 마지막 월요일에 관객들을 만나왔다.

그런데 '중단'될뻔 했다는 이야기에 순간 '직업병'이 도진 기자가 연유를 알아보니 '지원휴식년제' 때문이란다.

지역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고 있는 광주문화재단이 오랜 고민끝에 올해 처음 도입한 '지원휴식년제'는 사업의 성격에 따라 개인은 1년, 단체는 최장 4년 후 휴지기를 갖도록 하는 제도다.

일부 단체들에 장기간 편중된 지원금을 여러 단체가 고루 받을 수 있도록 도입한 것이다.

10년 가까이 광주대인예술시장에서 레지던스를 운영하며 국제적인 결실을 맺어온 미테-우그로도 올해 '지원휴식년제' 대상이 돼 레지던스 사업을 대폭 축소해야만 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가장 먼저는 광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행사나 사업들이 재단의 지원금 때문에 중단되어야 한다는 열악한 현실이 안타깝지만, 모든 것을 '형평성' 차원으로 접근하고 결정해야하는 한계는 씁쓸함을 더한다.

국민의 혈세를 쓰는지라 반드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근거나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늘 '숫자'여야만 하는지 푸념 섞인 혼잣말이 입속에서만 맴돈다.

무등일보 zmd@chol.com


이윤주 문화체육부 차장

 
 

[수필]「민중의 노래」- 이대 동창문인회

민중의 노래


내 고향 광주는 봄이 늘 고통이었다. 그러기를 수십 년, 한 세대가 바뀌어도 상처는 아물 줄을 모른다. 진혼곡이든 무엇이든 불러 목이 터져도 시원치 않을 그날이 오면 더욱 서럽다. 이 노래는 저 노래는 된다 안된다, 합창은 제창은 된다 안 된다, 해서 상처는 더 벌어진다. 근년에는 T.S.엘리엇의 의미에서 잔인한 달이 아닌, 숨이 멎도록 잔인한 4월이 더해져서 남도의 5월은 이미 먹구름 슬픔 속에서 시작된다.

그런 5월이 끝나가는 즈음 사직공원에 위치한 작은 음악당에서 ‘김원중의 달거리’라는 음악공연이 있었다. 매월 있는 공연이라는 의미로 달거리이며, 2003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82회째에 이른 이 굿마당은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부제가 ‘빵 만드는 공연’인만큼 출발할 때부터 실제로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을 후원해오고 있다고. 지금은 정치적 여건으로 공장 가동이 멈추었다고 하니 한 구석 씁쓸해진다.

올해를 여는 달거리 5월 공연 무대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막이 올랐다. 악기 없이 목소리의 화음만으로 연주하는 아카펠라 그룹이 부르는 아름다운 선율에 청중은 그만 숨이 멎었다. 장내에는 완벽한 고요만이 흘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 노래는 80년 5월의 한이 녹아내린 광주의 노래가 맞다.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보루 도청에서 제 나라 계엄군의 총탄에 산화한 시민군 대변인 윤OO과 먼저 떠난 노동운동가 박OO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다. 하지만 유족이건 시민들이건 아무런 연유도 작정도 없이 저절로 옛 5월을 추념하면서 불러온 노래다. 어느새 민중가요가 되어, 노동운동이나 시민사회운동의 자리에서 늘 불리게 되었다. 마침내 1997년에 이르러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승격되어 정부 주관으로 첫 기념식이 열렸을 때는 기념 곡으로서 공식적으로 제창되었다. 그제야 ‘사랑도 명예도’ 한을 푸는가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야속했다. 지난 정부 들어서 돌연 제창이 공식 식순에서 제외되고 식전 행사로 밀려나더니, 어느새 제창 자체가 폐지되고 합창단의 메뉴로 변질되었다. 한술 더 떠 현 정부에서는 ‘별도’의 기념곡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미명으로 아예 광주의 노래를 묵살하기에 이르렀다.

광주는 봄만 늘 고통이었던 것은 아니다. 광주는 사시사철 의붓자식이요 외톨이였다.

“선배님, 요샌 괜찮으세요?”

80년대에 어쩌다 서울에서 대학 후배들을 만나면 묻는 안부의 말이 하 수상했다. 불온한 소굴쯤인 광주에서 교수노릇하면서 밥 먹고 살자니 얼마나 고생이냐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이었다.

그런 광주에서, 또 어느 5월에 열린 음악공연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불려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게 되다니. 어쩌면 당연한 선곡이었을 것이다. 공연을 주관한 김원중은 대학 재학 시절에 「바위섬」으로 세상에 나온 가수다. 소위 지방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유명해진 노래는 드물다고, 올해도 7월 초 7080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그렇게 소개한 곡이기도 하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 인적 없던 이곳에 /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 모두 사라지고 /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 [중략] //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 아무도 없지만 / 나는 이곳 바위섬에 / 살고 싶어라~ //

80년 5월 이래 어쩔 수 없이 고립된 광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래였으니, 그는 광주를 노래하는 가수일 운명이었다. ‘광주의’란 형용사가 더 큰 세상으로의 발돋움에 걸림돌이 될지언정, 그가 없는 광주는 이상할 터다.

이번 5월 공연의 주제는 가수의 말 그대로 ‘People who will not be slaves again’, 더는 노예적 삶을 참지 않겠다는 민중의 노래에서 차용한 것이었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에 삽입된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시작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혁명을 선도하는 학생회 지도자 앙졸라가 선창하고 다른 학생회 회원들과 군중이 함께 부르는 노래다.

그대 듣고 있는가 / 분노에 가득 찬 노래 / 굴종의 삶을 거부하는 / 우리들의 노래를 / 너의 심장소리와 / 북소리 울려 퍼지면 / 어둠 뚫고 새날이 / 밝아 오리라……

영어와 한글로 노래하는 김원중과 시민합창단의 목소리는 손에 든 촛불만으로 밝힌 어두운 무대 위에서 떨고 있었다. 환하게, 장엄하게.

노래의 배경이 된 1832년 파리의 6월 봉기는 진압된 민주화운동으로서의 광주의 5월과 놀랍도록 맞닿아있다. 1830년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가의 샤를 10세가 퇴위하고 하원에서 루이필리프를 왕으로 선출했지만, 공화주의자들의 견해에서 보자면 왕에서 왕으로의 대체는 무의미했다. 1832년 6월 라마르크 장군의 시민장 장례 행렬이 바스티유광장으로 향하면서 시작된 봉기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터졌다. 하지만 밤새 2만 5천명 정규군이 합류했으니, 시민군의 바리케이드는 이틀을 버티지 못했다. 마지막 보루 생 메리 교회에서 시위대의 손실은 93명 사망에 291명이 부상을 입는 정도로 컸다.

1980년 광주의 5월. 군부독재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을 행해 시위 나흘째인 21일에 본격적으로 집단 발포가 시작되었다. 27일 새벽 투입된 2만 5천명 계엄군은 상무충정작전이란 이름으로 1만여 발의 사격을 감행했다. 진압은 훌륭하게(?) 종결되었다. 정부가 인정한 공식적인 사망자 수만 해도 154명이었다.

그러나 잠깐, 순간의 평가로 본 실패란 언제나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던가. 파리의 6월 봉기는 좌절했지만 혁명의 정신은 잉태되어 무르익어 갔다. 세월은 흘러서 1848년 2월 혁명이 도래하고, 그제서 성공한 혁명은 마침내 제2공화정을 이끌어 내며 온 유럽으로 확대되어 세상을 변하게 하지 않았던가. 하긴 그 대통령이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켜서 공화국을 폐지하고 제2제정을 수립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 수밖에.

역사의 아이러니는 끝도 없다. 1980년 5월 광주의 금남로에서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를 했던 그 11공수특전여단이 이제서 감히 그 광주의 금남로에서 호국퍼레이드를 꾀하다니. 보훈처가 그 계획을 전격 취소했으니 망정이지, 11공수특전여단이 광주에게 누구인가, 무엇이었는가. 그것을 그들은 잊을 수도 있다니. 때로는 무심함도 죄렷다. 광주 사람들은 어째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쉬이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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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에 봄은 잉태되고」이대동창문인회(320~324, 2016.11.7)
[출처]글: 서용진 http://yjsuh.com/348


이대 동창문인회

 
 

[블로그]2016년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앨범 (2016. 5월~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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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2016년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리셉션 (2016. 5월~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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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84번째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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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그]이 가을 위로가 된다. 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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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김원중 달거리 공연- 주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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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달거리’ 공연 나선 가수 김원중씨

“젊은 예술인 발굴…시민에 소개하겠다”
매달 마지막주 월요일 오후 7시30분 빛고을문화관 공연
한반도 냉전구도로 北에 밀가루·설탕 전달 못해 아쉬워
민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남북 평화통일’ 이야기해야




“정부가 바뀌는 과도기이지만, 광주시민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끊임없이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달거리’ 공연이어도 좋고,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죠. 반세기가 지나도 쉽게 풀지 못한 것이 바로 남북문제 아니겠어요. 인내를 갖고 함께 헤쳐나가야죠.”

올해 첫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을 앞둔 가수 김원중씨는 30일 “음악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통일의 음악회를 통해 시민들이 ‘평화적 소양’을 갖춰가길 희망한다”며 “‘달거리’ 공연을 통해 전쟁보다는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원중의 달거리’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광주 대표 공연이다. ‘달거리’ 공연은 지난 29일을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오후 7시30분 광주 남구 구동 빛고을시민문화관 공연장에서 열린다.

‘달거리’ 공연은 단지 음악과 노래만을 즐기는 게 아닌, ‘북한 아이들을 위한 빵 만드는 공연’으로 더 유명하다. 관람객들이 공연 이후 ‘감동후불제’로 기부한 금액을 매년 북한 아이들을 위한 ‘옥류빵’을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공연에서 모금한 금액은 매년 북한 빵공장의 밀가루와 빵을 사는 데 썼지만, 현재는 한반도 냉전구도로 인해 중단된 상태다.

“모인 기금은 지금까지 1억원이 넘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건 MB정부 이후 밀가루와 설탕이 북한으로 가질 못하고 있다는 거죠. 남북의 평화교류가 이뤄지는 날, 빵을 만드는 데 쓰려고 모금액을 안 쓰고 잘 남겨뒀습니다.”

또한 최근 장미대선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상황과 관계없이, ‘달거리’ 공연은 남북 평화통일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일에 대해서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민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평화를 원하는 목소리들이 모여 마침내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남북의 평화를 위해 시작한 ‘달거리’ 공연은 올해부터 청년 아티스트들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을 조명하고 소개하는 자리로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유명한 출연자들을 대거 등장시키는 것이 기존 공연의 특징이었다면, 올해부터는 젊은 친구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달거리’ 공연을 통해 검증된 지역 밴드의 공연에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특히 ‘빵 만드는 갤러리’ 코너를 통해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한편, 가수 김원중씨는 1984년 ‘바위섬’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후 ‘직녀에게’, ‘나목’, 등을 발표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총 6장의 음반, 3장의 기획앨범, 참여앨범 28여장을 발표했다. 특히 ‘5·18추모거리공연30일’, ‘5·18 영령 49일·49재공연’, ‘잘 가라 지역감정 49개 도시 순회공연’ 등 현장에서 노래해 왔다. 2013년 광주평화음악제 총감독, 2014년 오월창작가요제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 ㈔오월음악 이사장,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 홍보대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 문의 010-3670-5802)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상식 밖의 공연 빵을 만들고, 평화를 만들다

이계양(광주 북녘어린이빵공장 운영이사/광주YMCA 이사장)

<빵 만드는 공연 ? 김원중의 달거리>는 지난 2003년부터 15년째 진행하고 있는 공연이다.
김원중 가수는 “노래를 가지고 벗님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통해 이 달거리가 지금 고통 속에 있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한 줌 사랑으로 흐를 수 있다면 큰 보람이겠습니다.”며 이 공연을 시작했다. 또 “북녘어린이빵공장 사업본부가 평양 대동강 가에 지은 빵공장에서 만든 ‘옥류’라는 이름의 빵을 먹은 북녘유치원생들이 빵을 만들어주던 남쪽의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평화의 마음이 싹틀 수 있을 것이라고 보며 이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공연의 의의와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수는 노래로 밥(빵)을 먹는 사람이라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공연은 상식 밖이다.
김원중의 달거리는 노래로 빵을 만드는(생산하는) 현장이다. 별도의 입장료도 없지만 달거리공연은 빵공장 모금함에 감동후불제의 기부를 통해 빵을 만들어 내고 있다. 5000원으로 옥류빵을 30개 만든다고 한다. 이미 1억 원이 훨씬 넘는 기부금으로 만든 빵이 북녘어린이들의 가슴과 배를 따뜻하게 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 벅찬 일이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는 빵을 만들어 내는 노래야말로 노래를 넘어 생명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연의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하여 지역의 신진 예술가에게 무대를 제공함으로 예술적 감성과 영혼의 빵을 만드는 인큐베이팅까지 하고 있어 유형무형의 빵공장인 셈이다.

또 김원중의 달거리는 평화를 만드는 현장이다. 북녘어린이들이 옥류빵을 먹고 평화의 마음을 품에 간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이 공연의 의의 중 하나임을 생각해 보면 이 공연은 먹거리인 빵을 통해 평화의 본질에 다가서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왜냐면 평화(平和)란 빵(禾-벼)이 입들(口)에 공평할(平) 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체제를 떠나 생명의 정의에 입각하여 볼 때 먹는 것의 평화야말로 절대정의이다. 이 명제에 김원중의 달거리는 합목적적인 공연이다. 더불어 음악 미술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세상을 향해 날개 짓 할 자유를 제공하는 아름다운 평화의 광장이 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모습이다.

나아가 김원중의 달거리는 시민들의 문화플랫폼이 되고 있다. 공연의 횟수가 쌓이면서 광주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늘어가고 공감력이 깊어가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광장이 되었다. 특히 공연 후 후원회가 마련한 뒷풀이 자리는 소통과 교제의 무대가 되어 문화적 연대감을 갖게 하는 승화된 시민문화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원중의 달거리는 100회 공연을 앞두고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여지껏 노래로 빵을 만들고 평화를 꿈꾸어 왔는데, 이제는 노래로, 육로를 통해 휴전선을 넘어 애환의 땅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동토의 시베리아 벌판을 건너 베를린 장벽 앞에서 평화콘서트를 여는 꿈 말이다. 한 때 분단의 상징이었다가 이제는 평화의 상징이 된 베를린 장벽 앞에서 화해와 평화를 노래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빵 만드는 공연 ? 김원중의 달거리>는 확실히 상식 밖이다. <빵 만드는 공연 ? 김원중의 달거리>가 계속해서 빵을 만들고, 광주와 우리나라와 북한과 세계의 평화를 만드는 아름다운 무대가 될 것을 믿는다.


 
 

[블로그]2016년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앨범 (2016.5월~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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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2017년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리셉션 (2017.5월~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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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내 오지랖의 끝은 어디인가?(2017.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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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현장 스케치(201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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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김원중의 달거리 바닥공연사진 영상 다수(2017.06.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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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2017빵만드는공연 김원중의 달거리...팝페라 그룹 ‘빅맨싱어즈’(201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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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카 홈]가수 김원중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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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그]김원중의 달거리 제 90회 공연 (20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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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 있는 한, 통일되기 전까지



“광주가 있는 한, 통일 되기 전까지 북녘 향한 나눔 지속”
13년째 8년간 ‘달거리 공연’ 중인 가수 김원중을 만나다

총 74회 공연서 8천500여만원 자발적 관객 기부
“따뜻한 공동체정신 발현…오직 광주여서 가능”



광주가 존재하는 한, 통일이 되기 전까지 ‘달거리 공연’은 계속될 것입니다. 달거리 공연은 단순한 이벤트도 아니고, 이념을 기반으로 한 공연도 아니에요. 북한도 우리와 한민족이라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해 문화공동체정신을 발신하는 나눔의 무대입니다. 올해도 광주의 따뜻한 사랑을 북한의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어느덧 ‘달거리’란 문패가 익숙해진 가수 김원중(56·사진)씨는 “이번 달부터 시작해 올해도 7회에 걸친 ‘빵 만드는 달거리 공연’을 기획 중”이라고 16일 밝혔다.

올 첫 무대는 오는 29일 오후 7시30분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옛 구동체육관)에서 열린다. 이어 12월까지 매월 마지막 월요일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변함없이 달거리 무대를 만들 요량이다.

샌드애니메이션 작품의 화가 주홍씨를 비롯해 소프라노 유형민, 미디어아트 신창우, 국악그룹 루트머지, 광주알핀로제요들클럽 등이 대거 출연, 열정적인 무대를 함께 꾸밀 계획이다.

“달거리 공연은 다달이 한 번씩 노래로 앓고, 노래로 쏟아내고, 노래로 흐르고 싶다는 뜻을 담은 무대입니다. 공연은 무료로 진행되지만, 열정을 함께 나눈 관객들이 내놓은 온정을 북녘 어린이들을 위한 빵 공장에 기부하고 있죠. 그래서 ‘빵 만드는 달거리 공연’입니다.”

광주 달거리 공연의 시작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2004년 달거리 공연 성금 2천만원은 실제로 평양 대동강변에 ‘북한 영양빵 공장’이 설립되는 기폭제가 됐다. 이후 달거리공연은 중단됐고 2010년 다시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서 재개 첫 해인 2010년 달거리 공연 성금 1천417만7천860원은 곧바로 ‘북녘어린이 영양빵공장 사업본부’에 건네졌다. 영양빵 8만5천67개를 만들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어 2011년엔 1천254만1천580원, 2012년엔 1천521만2천80원, 2013년엔 1천352만9천233원, 2014년엔 842만3천330원을 각각 북녘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했다. 또 2011년엔 일본 센다이 돕기 성금 126만2천원, 작년엔 세월호유가족후원금으로 207만1천960원을 각각 보내기도 했다. 모두 달거리 공연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베푼 온정이다.



“달거리 공연은 13년째 이어지고 있고, 8년간 지속되고 있어요. 총 74회 공연 동안 관객들이 기부한 성금은 모두 8천514만6천83원입니다. 1원짜리까지 모두 모아 북녘어린이와 이웃돕기에 내놓았죠. 이처럼 지속적인 공연과 끊임없는 관객의 사랑은 광주여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연은 광주에서만 열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남북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광주에서는 달거리 공연이 열릴 것입니다.”

사실 달거리 공연을 계속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다. 관의 지원금으로 겨우 무료공연을 꾸미곤 있지만, 사비를 털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달거리 공연을 이어간 지난 8년 동안 김씨의 통장은 하나둘씩 없어지고 있다.

“매달 관객을 만나야 하다보니 공연 규모가 점점 커졌죠. 또 매번 다른 장르와 소통하는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여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출연진도 많아지고요. 사비를 몽땅 쏟아 부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사실 올해도 3월부터 시작하고 싶었던 공연을 6월부터 시작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마음만은 풍족합니다. 올해도 뜻이 맞는 고마운 예술가들 덕분에 풍성하고 달거리 공연이 이어질 겁니다.”



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온정 모아 ‘통일빵’ 만드는 광주 문화·예술 집합체

亞문화도시 광주, 미래를 여는 窓 <1>김원중의 달거리공연



2002년부터 13년째 지역 대표 브랜드 자리매김
노래·연주 외 예술작품·문화인사 소개 등 풍성
소통 중시…인터넷 생중계 서비스·해외 공연도



올해로 13년을 맞는 ‘빵 만드는 공연-김원중의 달거리’가 지난 2012년 무등산증심사문화공원에서 ‘무등산풍경소리’와 함께한 무대 모습. 아래 사진은 지난 2013년 전남도립국악단과 함께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아리랑, 세계 속으로 길을 걷다’를 주제로 꾸민 공연 모습.



지난 1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건립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오는 25일 정식 개관한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선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역할에 대해 문화계는 물론 지역사회 안팎의 기대가 크다. 특히 광주는 아시아문화전당 개관을 기점으로 도시 전체의 문화화에 주력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화두를 어깨를 얹고 광주 문화예술계의 브랜드를 발굴·연계해 그 시너지를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문화도시 광주의 성장을 견인할 인물과 프로그램, 정책 등 문화예술브랜드들을 하나씩 찾아보자. 그리고 이들의 연계를 통한 광주문화도시의 청사진을 그려보자. /편집자 註


광주 곳곳을 지나다보면 ‘김원중의 달거리’라고 써진 포스터가 눈에 띈다. ‘달거리’란 이름만 보면 ‘월경’을 떠올리기 십상이라,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대체 이게 뭐지…’란 생각이 앞설 수도.

‘달거리’는 어학사전에 한 달에 한 번씩 앓는 전염성 열병이라 명시돼 있다.

‘김원중의 달거리’는 광주 시민들에게 그런 열병 같은 존재다. 달거리 공연은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해 13년째 이어지고 8년째 지속돼 온 것으로 어느 새 광주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매년 1, 2월은 제외하고 달마다 한 번씩 광주 남구 구동 빛고을시민문화관 공연장에서 열린다. 달거리 공연에선 ‘바위섬’의 주인공 가수 김원중의 공연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을 맛볼 수 있다.

◇국내최초 ‘통일빵’ 만드는 공연=‘달거리’는 남북이 하나되는 날까지 열리는 공연이기도 하다. 단순히 광주 시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즐기는 공연에 그치지 않고,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

매달 열리는 달거리 공연을 마치면 관객들의 온정이 하나 둘 모이면, 그 성금은 북한 어린이들의 허기를 달래줄 빵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해서 ‘김원중의 달거리’의 부제는 ‘빵 만드는 공연’이기도 하다.

달거리 공연이 북한 아이들을 돕는 ‘빵 만드는’ 공연이 되기까지는 지난 2002년 미국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3년 전, 당시 부시는 북한을 ‘불량국가, 국제사회의 큰 위협이 되는 나라’라며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같은 해 공교롭게도 미군에 의해 ‘미선·효순’이가 잔인하게 죽게 됐다. 자연스레 한반도 정국은 냉기가 흐르게 됐고, 또 다시 전쟁의 위험이 도사렸다.

가수 김원중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같은 상황에 위기감을 가졌다고 한다. 특히 북한의 빈곤이 극에 달할 시기였기에 작은 보탬이 될까 싶어 ‘북한 어린이를 위한 사랑모으기’의 일환으로 달거리 공연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와 연계해 비로소 ‘빵 만드는 공연’으로 재탄생됐다.

실제로 지난 2003-2004년 달거리 공연 이후 모인 성금 2천만원은 평양 대동강변에 ‘북한 영양빵 공장’ 설립을 도왔다. 이후 남북 긴장 고조로 달거리 공연은 중단됐고, 지난 2010년에 다시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북한 아이들을 돕는 빵을 만드는 공연으로 시작했다면, 현재는 곳곳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담양 화재사건 뿐 아니라 일본, 칠레 대지진 등 재난민들을 위해 모금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달거리 공연은 한 해가 지나고 보면 최소 1천만-1천300만원이 모인다고 한다. 이 모금액은 단 1원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된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슬로건 아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매달 새로운 테마 눈길=달거리 공연은 ‘이벤트가 아니다’란 원칙이 있다. 거창한 ‘남북통일, 사회 운동의 의미’ 보다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즐기다 가는 ‘내실있는 공연’을 꾸미는 것이 목표다.

이에 매달 새로운 테마를 선보이고, 통기타 공연 이외에도 ‘광주 문화·예술의 집합체’라 볼 수 있는 풍성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달거리 공연은 한달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매달 새로운 테마를 선정하게 된다. 매달 주제에 맞는 게스트를 섭외하고, 그에 꼭 맞는 공연을 준비한다.

달거리의 중심인 가수 김원중은 오랜 시간 공연을 준비하면서 ‘소재 고갈’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노래와 연주로는 공연 내용이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매달 새로운 게스트를 초청해 예술 작품, 문화 인사들을 소개하게 됐다.

국악그룹 루트머지, 샌드 애니메이션 작가 주홍, 서양화가 한희원, 신창우 미디어아티스트, 광주알핀로제요들클럽 등을 초청하기도 하고 배우 권해효, 가수 안치환 등 시민들이 잘 아는 유명인사들을 초대해 무대를 꾸미기도 하는 등 그 소재도 다양하다.

또한 달거리 공연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인터넷 생중계 서비스를 통해 세계 곳곳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이 즐겨본다고 한다.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얼마 전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달거리 공연 현지 초청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달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매번 색다른 문화·예술의 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광주 대표 콜라보 공연 김원중 달거리 올해도

29일 첫 무대 올해 7회 공연
미디어아트 등 다장르 융합





하나의 무대 위에 포크송과 샌드애니메이션, 성악, 미디어아트 등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예술 장르가 한데 어우러진다.

입장료는 관객이 받은 감동의 크기만큼 내면 된다.

이렇게 한두푼씩 모아진 입장료는 통일의 염원을 담아 북으로 보내진다.

포크레전드 김원중(56)의 달거리 공연은 지난 8년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펼쳐진다.

오는 29일 첫 무대를 시작으로 7월 27일, 8월 31일, 9월 21일, 10월 26일, 11월 30일, 12월 28일 등
모두 7회에 걸쳐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펼쳐진다.

특히 올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을 주제로 색다른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아날로그 음악과 미디어아트가 어우러지면서 틀을 벗어난 공연을 접할 수 있을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는 삶의 애환을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흥겹게 풀어내는 가수 김원중씨를 비롯 어쿠스틱 사운드와 일렉트릭 사운드를 자유자재료 구사하는 '느티나무 밴드'와 '프롤로그', 신세대 아날로그 록 대중음악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우물안 개구리'와 '바닥프로젝트'가 참여한다.

이와 함께 샌드 아티스트 주홍과 소프라노 유형민, 광주알핀로제요들클럽이 미디어아티스트 신창우씨 등의 참여로 풍성한 무대를 선보인다.

김원중씨는 "달거리 공연은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라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콜라보레이션 무대이다"며 "회를 거듭할 수록 개성있는 예술인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더욱 풍성한 무대를 선보있게 됐다"고 공연에 대해 소개했다.

이어 "북한어린이를 돕기 위해 시작한 공연이 올해로 8년을 맞고 있다"며 "통일을 염원하며 지속적으로 개최되는 공연을 전국에 달거리 공연이 유일하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도 공연을 꾸준히 이어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올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어우러진 실험적인 무대를 선사할 예정으로 아날로그 음악들이 주축을 이루고 디지털을 대표하는 미디어아트가 무대에 어우러짐으로써 색다른 공연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는 지난 2003년과 2004년 드맹아트홀에서 '북한어린이 사랑모으기'를 주제로 24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이어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상설공연을 펼침으로써 광주 대표 풀뿌리 지역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원중의 달거리는 지역 문화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의 참여를 높이고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여 지역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김현주기자 zmd@chol.com

 
 

“죽는 날까지 평화 위해 노래 할래요”

● 5·18 아픔 담은 ‘바위섬’ 부른 김원중

가수 김원중은 ‘공부를 무지 싫어하는’ 전남대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기타 하나 들쳐 메고 여대생들의 환호를 받는 것이 익숙한 ‘오빠 부대’의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가수이자, 북한 아이들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운동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세상을 위한 그의 발자취가 오늘날에 이어지기까지 그는 “1980년 5월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가감 없이 말한다. 그는 ‘놀기만 하던’ 대학 시절을 뒤로하고 군대를 마치고 오니 어느 새 암흑의 1980년대를 맞았다고 했다.
군 제대 후 바로 고시준비에 들어간 그는 공부에 찌든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주말마다 ‘음악’에 심취했다. 우연한 기회에 기라성 같은 가수 선배들을 만나게 됐기 때문.

“당시 사직동에 ‘크라운 광장’이란 생맥주 가게가 있었어요.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는 소규모의 무대가 있었는데 유명 가수들이 주말만 되면 묘하게 다 모이는 겁니다.”

그는 이 곳에서 소리모아, 김정식, 김종률 등 MBC 대학가요제 금·은·동상 수상자들, 신상균 VOC전일가요제 대상곡 작곡자, 이동락 대학교수를 만났다. ‘친목 도모’ 형식으로 이어지는 모임 가운데 김원중은 이들과 함께 음반을 만들게 됐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이 앨범 작업은 ‘가수 김원중’에게 ‘바위섬’이란 대표곡을 안겨줬다. 사람들은 가수 김원중 보다 ‘바위섬’을 기억한다. 바위섬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아픔을 되새기게 해, 광주인들에게 더욱 특별한 곡이기도 하다.
이처럼 노래를 좋아하던 평범한 대학생 김원중은 어느덧 환갑에 가까운 나이가 됐다. 그는 죽는날까지 이념 없는 이 세상, 남북통일의 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노래하고 달거리 공연을 준비할 것이라고….

“달거리 공연이 남북 사이를 접합하는, 아주 작은 실핏줄 하나라도 이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우리 돈 5천원이면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빵 30개를 만들 수 있어요. 북한 아이들에게 빵을 전달하는 작은 노력이 이어진다면 ‘한반도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사람 간 신뢰가 있어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뤄지듯 남북도 신뢰가 쌓여야 합니다.”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세월호 가족이 부르고 관객들과 함께 운 노래 ‘약속해’

세월호 가족들 “힘들지만 우리 아이들이 내준 숙제 끝까지 풀겠다”




4.16가족합창단이 30일 오후 빛고을시민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린 ‘세월호를 기억하는 문화제 - 우리, 여기 있어요’에서 윤민석씨가 만든 노래 ‘약속해’를 불러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있다.ⓒ김주형 기자


우리가 너희의 엄마다 우리가 너희의 아빠다
너희를 이 가슴에 묻은 우리 모두가 엄마 아빠다
너희가 우리 아들이다 너희가 우리의 딸이다
우리들 가슴에 새겨진 너희 모두가 아들 딸이다

그 누가 덮으려 하는가 416 그 날의 진실을
그 누가 막으려 하는가 애끓는 분노의 외침을
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우리 모두 행동할 거야
이 마저 또 침묵한다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어
끝까지 다 밝혀낼 거야 끝까지 다 처벌할 거야
세상을 바꾸어 낼 거야 약속해 반드시 약속해
- 윤민석 작사·작곡 ‘약속해’ 가사

세월호 유가족들로 구성된 ‘4.16가족합창단’은 30일 오후 빛고을시민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린 ‘잊지 않겠다는 약속, 세월호를 기억하는 문화제 - 우리, 여기 있어요’에서 ‘약속해’ ‘손을 잡아야 해’ 등을 불러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 세월호를 기억하는 문화제 - 우리, 여기 있어요’가 30일 오후 빛고을시민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리고 있다. ‘빵 만드는 공연 - 김원중의 달거리’와 함께 한 이날 문화제에는 시민 300여 명이 함께 했다.ⓒ김주형 기자



이날 문화제는 ‘빵 만드는 공연 - 김원중의 달거리’(매달 마지막 월요일)에서 세월호 참사 600일을 앞두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문화예술인,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와 손을 잡고 준비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김동혁군의 아버지 김영래씨는 유가족을 대표해 “작년보다 올해가 더 많이 힘들다. 공교롭게도 내일(1일)이 동혁이 생일이다. 아이가 없는 아이의 생일은 상상도 하기 싫고 공허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도 “아이들이 내준 숙제가 있기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 특조위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의 민낯을 너무 많이 보았다. 피케팅 나가고 서명 받고 간담회도 진행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안에 아홉 분 미수습자가 있다는 걸 잘 모르더라. 아홉 분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면서 “아이들이 내준 숙제 ‘우리가 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었나요’라는 물음에 꼭 답을 주고 싶다. 많이 힘들고 지치지만 엄마 아빠이기에 끝까지 숙제를 풀어보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관객들을 향해 “여기 어린 학생들도 많이 있는데 엄마 아빠에게 항상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발언을 마친 뒤 4.16가족합창단은 ‘약속해’ ‘손을 잡아야 해’를 잇따라 불렀고, 노래를 부르는 도중 세월호 가족들과 관객들이 곳곳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노래패 우리나라는 이날 문화제에서 ‘화인’ 등을 불러 세월호를 기억하는 문화제에 함께 하고 있다. 이날 문화제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샌드아트작가 주홍, 나희덕 시인, 인기가수(손병휘, 이정렬), 말로밴드, 4.16가족합창단, 작은 뮤지컬 ‘나 여기 있어요’팀(이정렬, 전성민)과 ‘직녀에게’ 가수 김원중씨가 공연에 참여했다.ⓒ김주형 기자


세월호를 기억하는 문화예술인들을 ‘해원(解寃)의 전사’라 이름붙인 가수 김원중씨는 문화제를 시작하면서 “광주에서 시작된 이 해원의 몸짓들이 이땅의 모든 것들을 감동시키고 변화시켜 하루빨리 가라앉은 그 모습 그대로 세월호가 우리 눈 앞에서 올라오기를 정말 소망한다”고 말했다.

문화제에는 4.16가족합창단을 비롯해 노래패 우리나라, 나희덕 시인, 인기가수(손병휘, 이정렬), 말로밴드, 작은 뮤지컬 ‘나 여기 있어요’팀(이정렬, 전성민)과 ‘직녀에게’ 가수 김원중씨가 참여해 세월호참사 희생자들과 미수습자 9명을 기억하는 공연을 진행했다. 아울러 가수 이승환씨의 노래 ‘가만히 있으라’가 주제곡으로 삽입된 ‘나쁜 나라’(3일 개봉, 세월호 참사 이후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주홍 작가의 샌드아트 등이 영상으로 선보였다.

이날 ‘빵 만드는 공연 - 김원중의 달거리’에서는 2백여 만 원을 세월호 유족들에게 후원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이날 ‘빵 만드는 공연 - 김원중의 달거리’에서는 그동안 모아진 후원금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김주형 기자


김주형 기자

 
 

[블로그]2015년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앨범

http://cafe.daum.net/kimwonjoong12/2BRl/23

 
 

[블로그]채은옥의 빗물! 7월 김원중의 달거리

http://blog.naver.com/choim1/220433716477

 
 

[블러그]‘광주문화’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http://saygj.com/6246

 
 

[블러그]누가 새 대가리라 하는가- 8월 김원중의 달거리'

http://blog.daum.net/ourskygarden/3821206

 
 

[블러그]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http://blog.naver.com/jmj4401/220486142645

 
 

[블러그]4.16과 김원중의 달거리

http://cafe.daum.net/ppdudwl/LviI/8780?

 
 

[블러그]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사진으로 합창단 활동

http://blog.naver.com/choir0416/220582421168

 
 

철조망 대신 목련꽃 ♪♬ 통일 노래한 김원중



31일 오후 7시30분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올해 첫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열렸다. 2003년과 2004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모두 6년 동안 열린 '달거리' 공연은 올해로 7년째를 맞이했다. 이날 열린 공연은 횟수로 65번째다. 김원중은 올해 12월까지 매월 마지막 월요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공연을 개최할 계획이다.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모티브는 '평화'이다. 매달 무료공연을 열어 모은 성금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빵을 만드는 데 쓰인다. 그래서 달거리 공연 앞엔 항상 '북한 어린이 사랑 모으기'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김원중은 2003년과 2004년 공연을 통해 걷은 성금 2000만원을 '북녘어린이 빵공장' 설립에 보탰다. 그 성금이 기폭제가 돼 평양 대동강에 북한영양빵공장이 만들어졌고, 현재도 매일 1만개의 빵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동안 뜸했던 '김원중의 달거리'는 2010년 다시 출발해 '빵 만드는 공연ㆍ김원중의 달거리'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후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모은 시민 성금은 7670만원에 달한다.

이렇듯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은 남북 화해와 평화에 '밀알'이 되고 있다. 올해 김원중의 달거리는 남북 통일에 대한 단상으로 시작했다.

'저에게 있어 봄은 온도가 아무리 올라가더라도/ 개구리가 눈앞에서 뛰어놀아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일뿐입니다./ 저에게 있어 봄은 하얀 목련이 솟아 올라올 때 비로소 봄입니다./ 골목길 어귀에 피어 온 동네를 환하게 밝히는 하얀 / 목련이야말로 겨울과 봄을 가르는 제 나름의 가시적 경계입니다./ 한반도에 어쩔 수 없는 경계가 있어야 한다면/ 철조망이 아닌 목련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께서 통일을 대박이라고 했습니다./ 온 나라가 통일을 대박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영원한 분단을 막고 휴전선을 철조망이 아닌/ 목련꽃으로 바꿀 수 있겠지요.'

'휴전선은 국경입니까?'라고 반문하는 김원중은 "한반도에 남ㆍ북 경계가 필요하다면 철조망이 아닌 목련꽃을 심는 발상을 해야 한다"며 "이런 것들이 '대박'"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와 화해의 대한 진정성이 있어야 통일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 하다.

이처럼 올해 '달거리' 공연은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대신 평화의 꽃을 심자는 메시지를 던지며 시작됐다. 예년 처럼 클래식과 국악, 미술과 문학 등 여러 장르가 버무려지는 융합공연으로 꾸며졌다.

'달거리' 공연의 주축인 가수 김원중과 윤진철 광주시립국극단장, 샌드애니메이션 작가 주홍, 느티나무밴드, 미디어 아티스트 박상화씨가 함께하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신진 뮤지션을 소개하는 '줄탁', 영화 속 노래찾기 등의 코너도 이어졌다. 작곡가 박의혁씨가 클래식&재즈 감독으로 합류해 공연을 풍성하게 했다. 바닥프로젝트(임웅ㆍ김영훈ㆍ김현무), 미디어아티스트 박상화, 광주알핀로제요들클럽도 '달거리'에 동참했다.

달거리는 문화융합 프로젝트인 만큼 공연장을 갤러리로 변모시키는 작가들이 참여한다. 올해도 한희원ㆍ김해성씨가 선정한 화가 김정연ㆍ류현자ㆍ문정호ㆍ서병옥ㆍ윤해옥ㆍ이준석ㆍ최병구ㆍ허달용ㆍ황순칠씨가 참여했다. 이들은 매달 한명씩 전시회를 열고 연말엔 단체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와함께 올해는 화상 중계를 통해 달거리 공연의 취지에 공감하는 외국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실시간으로 공연장에서 볼 수 있게 됐다. 3월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일본 우타고에합창단의 공연을 접했다.

김기봉 기자 gbkim@jnilbo.com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2003년 처음 시작된 '달거리 공연'은 지역의 문화 사랑방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달거리 공연'을 통해 지역 문화의 현장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창작역량을 키울 수 있게 됐다. 특히 '김원중의 달거리'는 지역 문화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과 소통하는 자유로운 현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최첨단 공연, 예술교육, 작품 감상을 통한 '문화향유의 장' 역할도 하고 있다.


올해 남은 공연 일정은♬
매달 마지막주 월요일 오후 7시30분
장소는♪ 빛고을시민문화관
입장료는♪♪ 공연 후 자유 모금


주요 출연진은♬
김원중(오월창작가요제 총감독)
윤진철(국악감독)
주홍(sand Animation)
박의혁(Classic&Jazz감독)




 
 

컬쳐&피플/“달거리 공연은 ‘예향 광주’의 집합체”




[광주일보] 컬쳐&피플 (2014.4.30)

 
 

[블로그]가수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세월호 참사 추모공연

http://blog.naver.com/alex514/140211914832

 
 

[블로그]2104문화예술공간프로젝트지원사업'김원중의 달거리'

http://gjgjcf.blog.me/220011938380

 
 

[블로그]빛고을시민문화관빵만드는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http://blog.naver.com/3105422/220078582285

 
 

[블러그]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하는 광주의3대 열린음악회

http://blog.gwangju2015.kr/1400

 
 

콜라보, 문화예술 핫 트랜드로

[창간26주년 특집]콜라보, 문화예술 핫 트랜드로

광주 문화예술계 협업작업 활발
장르 넘나들며 시너지 효과 톡톡
다양한 장르 한무대에 관객 호응




그림은 갤러리에서 감상하고 공연은 공연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미술과 전시, 사진,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지만 최근 이러한 흐름에 새로운 변화가 눈에 띈다.

바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으로 빚어진 무대들이다.

미디어와 발레, 연극과 국악, 음악과 영상 등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문화예술의 경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융합 작품들이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콜라보 작품은 각 장르간 부족한 부분을 메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뿐 아니라 여러 장르를 한데 섞어 선보임으로써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있다.

최근 광주지역 공연작품에는 이러한 융복합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문화예술 분야의 핫 트랜드이자 또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융합 작품 잇따라

올해 광주지역 공연계에는 콜라보 작업이 잇따랐다.

지난 3월 그린발레단의 '창작동화발레 백설공주'와 광주시립무용단의 'k-아리랑', 박윤모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의 1인극 '아버지'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린발레단의 백설공주에는 미디어아티스트 진시영 작가가 참여했다.

전통 발레의 우아한 춤사위와 미디어아트의 화려한 영상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공연장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동화 속 나라를 옮겨 놓은 듯한 영상은 발레가 주는 딱딱함을 완화시켰다.

또한 시립무용단의 'K-아리랑'에는 미디어아트 작가 박상화씨와 신도원씨가 참여해 색다른 무대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광주의 예술사를 발레로 그려낸 일종의 상징적 스토리로서 무용예술의 르네상스를 통해 제2의 부흥기를 꿈꾸는 '문화중심도시 광주 발레'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날 공연에는 시립무용단의 발레를 기본으로 시와 영상 등 다양한 장르가 융합돼 색다른 무대를 선보였다.

무용 뿐만 아니라 연극에서도 콜라보 작업이 이뤄졌다.

시립극단 예술감독이자 배우 박윤모의 모노드라마 '아버지'에는 미디어아트와 국악이 스며들었다.

1인극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작품 전개에 미디어아트를 이용한 영상과 판소리, 가야금 병창 등이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광주시향 역시 클래식 연주에 그림자극을 더한 '그림자극 불새' 공연했다.

올해 개관을 앞두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 공연에서도 협업은 빠지지 않는다.

지난 8월 진행된 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가수 봉게지웨 마반들라와 모잠비크의 마추미 장고, 한국 전통 타악기 연주자 장재효, 이아름으로 구성된 '한-아프리카 콜라보레이션'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아우리는 무대를 선보여 박수 갈채를 받았다.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은 광주에서 대표적인 협업 무대이다.

매월 클래식과 국악, 미술, 대중음악, 미디어 아트, 회화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매니아층까지 확보했다.


◆오감만족 관객 호응

문화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콜라보는 장르간 부족함을 채운다는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미디어아트와 발레, 연극의 융합은 무대 미술의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킬 뿐 아니라 풍성하고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이며 시너지를 발휘한다.

또한 전문적인 장비와 시설을 갖춘 전문 공연장이 손에 꼽히는 지역의 열악한 현실 속에서 장르간 다양한 협업 작업은 소규모 공연장의 미흡함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범람하는 문화예술계

미디어아트와 공연을 별개로 관람하거나 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통해 각각의 장르를 감상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장르간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부각시키는 콜라보 무대는 문화예술 홍수 속에 메말라가는 관객들의 문화향유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충분하다.

또한 이같은 콜라보 작업이 지속적으로 시도된다면 예술가들의 영역 확장으로 인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과 색다른 무대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껏 높아지고 있다.


◆폭넓은 작품 세계 선사

예술가들은 장르간 장점 부각과 단점 보완, 폭넓은 작품 세계를 선사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콜라보 작업을 지속적으로 고집할 계획이다.

박윤모 예술감독은 "일인극인 '아버지'의 경우 한 사람의 일대기를 배우 혼자서 이끌어가는 것이 힘이 붙칠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지루할 수가 있어 공연 때마다 많은 고민을 했었다"며 "주기적으로 공연을 버전업 하면서 국악과 미디어아트 등 타 장르와의 함께 작업했더니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기존 작품에 찾을 수 없는 재미까지 선사했다"고 콜라보 작업의 장점을 밝혔다.

지속적으로 콜라보 작업을 해왔던 미디어아티스트 진시영 작가와 그린발레단 박경숙 단장 또한 협업으로 인해 색다른 무대를 선사할 수 있다는 데 높은 평가를 했다.

박 단장은 "무용과 미디어아트 등 서로 다른 분야를 한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의 만만치 않은 노력이 요구된다"며 "다른 장르이기 때문에 부자연스럽지 않게 어우러지도록 끊임없이 협의와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 작가는 "작품을 준비하는데 혼자서 할 때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과정도 결코 간단하지 않지만 완성된 작품을 무대에 올렸을 때의 감동은 배 이상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주기자 zmd@chol.com

 
 

[블러그]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60만번의 트라이'

http://blog.daum.net/huhasim/1878

 
 

[블러그]김원중의 달거리 11월 공연 진선미 의원과 함께하는 '동행'

http://blog.naver.com/smjingogo/220191625072

 
 

칼럼 아침시평-문화송년회 어때요


박선정동아시아문화도시추진위 기획단장


이번에는 억새와 들국화로 무대를 꾸몄다. 한 켠에는 토크쇼 초대손님을 위한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다. 무대세트 기능을 하는 이 오브제들 위로 조명이 내리꽂히자 늦가을 정취가 뿜어져 나온다. 무대 뒤편 스크린에는 지역작가의 아름다운 영상그림들이 장면 장면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매달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특색있는 무대를 만드는 ‘김원중 달거리공연’ 이야기다. 벌써 73번째라니. 6년이 넘게 가수 김원중은 지속적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셈이다. 드맹 아트홀에서, 구 KBS 영상관에서 그리고 2011년부터는 지금의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북한 어린이를 위한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공연이 열렸던 날, 밖에는 촉촉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가을 밤비에 젖은 채 감성으로 충만된 발길은 메가박스 영화관으로 향한다. ‘모던발레 채플린’을 보기 위해서다.

요즈음 메가박스 스크린으로 품격높은 클래식 영상 보는 재미에 뿍 빠져있다. 오페라, 연극, 발레,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콘텐츠를 대형화면의 생생한 영상과 사운드로 접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을 느끼곤 한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와 ‘아라벨라’, 전 세계 4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는 영국국립극장 제작 NT라이브 연극 ‘워 호스’, 런던 공연 실황을 담은 영국 웨스트엔드 최고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가 최근 관람한 작품들이다.

독일 라이프치히 발레단의 작품 ‘모던발레 채플린’은 찰리 채플린의 삶을 그린 발레극이다.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인간 채플린의 모습을 전통적 발레 형식을 탈피한 모던발레로 재탄생시켰다. 우리는 채플린을 그가 연기한 캐릭터 ‘리틀 트램프’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큰 구두와 헐렁한 바지,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을 달고 진지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흔들며 거리를 누비는 광대 ‘리틀 트램프’는 그 자체로 채플린이었다. 그러나 채플린의 작품은 희극을 그리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파편화되고 도구화된 인간의 모습을 애잔하게 또는 관조적 슬픔으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인간 채플린이 자신의 분신 같은 캐릭터 ‘트램프’를 슬픈 눈으로 응시하는 대목에서 채플린의 진정한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정신적으로는 공허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진정 가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이 말라버린 사람들이 많다. 감정을 잘 느끼고 표현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인 감성능력을 살려야 한다. 희로애락을 느끼는 감정, 인지능력, 직관이나 영감 등이 다 감성이다. 이 감성은 예술가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감성능력이 회복되면 공감능력도 함께 성장한다. 예전에는 닫혀 있던 감각이 열리는 것이다.

예술이 왜 좋은가? 느끼는 힘, 감성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채플린은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고 말했다. 바로 감성능력, 공감능력의 빈곤을 지적한 말이다. 감성회복을 위한 방법으로 예술, 특히 공연예술과 친해질 것을 권한다.

12월은 한번도 ‘문화생활’을 안하던 사람들도 한번쯤 공연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시기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시즌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쯤 의식있는 기업이나 단체는 송년회도 먹고 마시는 회식 대신 가족들과 함께 공연과 전시를 관람하는 문화송년회로 대체한다. 문화예술을 공유하면서 감성을 키우고 공감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관객 수가 급감한 이후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 공연시장을 살려야 할 때다. 관객 수 보다 텅 빈 객석이 더 많을 때 공연을 준비한 아티스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민망함과 송구함을 언제까지 되풀이 할 것인가? 올 해가 가기 전 예술인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어떨까? 공연장에서 멋진 송년회를 하고 난 후.


무등일보 zmd@chol.com

 
 

[발행]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광주견문록





 
 

김원중의 달거리

글: 이보람, 김경인기자


‘빵 만드는 공연-김원중의 달거리’가 올해도 계속된다.

달거리공연은 가수 김원중과 지역 예술인들이 새로운 예술을 공감하며 나눔의 문화를 실천하는 창조적 예술 활동이다. 2003년 시작했던 달거리는 2005년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다가2010년부터 매달 열리고 있다.

올첫달거리는 지난 3월25일 ‘눈 녹은 물에 얼굴을 씻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김원중, 주홍, 강윤숙 재즈밴드, 진시영의 미디어아트, 느티나무밴드가 무대에서 400여명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신인소개 코너인 ‘줄탁’에는 25현 가야금 연주자 최상희씨가 출연했다. 무대 미술참여 작가는 화가 문명호씨였다.

달거리는 노래 공연 외에 지역 화가들이 만들어내는 멋진 무대 배경이 특징이다. 매달 선정된 작가가 주제에 맞는 그림을 선보여, 공연장을 갤러리로 변신시키다. 올해는 강동권· 김영태· 류재웅· 박선주· 임근재· 이율배· 정명동· 장현우씨가 참여한다.

올해는 또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롤로그의 노래 배달’이 신설됐다. 프롤로그(최성식·서민정·박강민)가 사연과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불러준다.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은 매월 마지막 월요일 오후 7시 30분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진행된다. 관람료를 받지 않고 관객들의 자발적인 성금을 모아 북녘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한다.

올해 공연은 4월29일, 5월27일, 6월24일, 7월29일, 8월26일, 9월30일, 10월28일, 11월25일, 12월30일 예정돼 있다. 문의는 010-3670-5802


<광주일보 문화예술 매거진 ‘예향’> 5월호


글: 이보람, 김경인기자

 
 

오월 광주를 노래로…‘민중 대중가요’ 전국에 뿌리다


지난달 27일 저녁 광주 남구 구동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에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자 김종률(왼쪽)씨가 출연해 가수 김원중씨와 광주의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원중씨 제공

광주 음악인들의 활약사

광주엔 독특한 노래의 흐름이 있었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던 시절, 광주에서 만든 노래는 달랐다. 선율은 서정적이었으나 현실을 이야기했다. 1980년 5월 이후 광주의 아픔을 담은 노래가 광주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광주의 노래, 광주 음악은 무엇인가.

“이 지역의 음악은 뭔가 달라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일들을 나하고 무관하다고 보질 않았지요. 그런 생각이 이쪽 예인들에게 녹아들어 있었어요. 생각이 많은 노래라고 할까.” 가수 김원중(54)씨는 19일 ‘광주 음악’, ‘광주의 노래’가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979년 3회 <문화방송>(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전남대생 김종률씨의 ‘영랑과 강진’은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자/ 그곳 백제의 향기 서린 곳/ 영랑이 살았던 강진…”이란 가사가 시처럼 흐른다. 광주 출신 정오차(57)씨가 81년 엠비시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바윗돌’은 대상곡이지만, 금지곡이 됐다. “5·18 당시 광주에서 죽은 친구의 묘비를 상징하는 노래”라는 배경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중씨는 “부산 출신이 대학가요제에 입상한 노래들은 감각적이고 필(감정)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부산뿐 아니라 서울 등 전국의 노래 스타일이다. 그런데 광주의 노래는 잘 바뀌지 않는 경향성이 있다”고 했다. 70년대 광주 엠비시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와 음악다방 디제이 문화 및 통기타 가수들의 공연 등은 광주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80년대때 아픔 알리려 ‘노래운동’
5·18 당시 기억 은유적으로 표현
전두환 정권 시절 ‘금지곡’ 수난


89년‘5월 추모’ 국내 첫 거리공연
2년뒤엔 전야제 공연으로 이어져
5·18 기록관에 120여곡 전시예정


하지만 80년대 이후 광주에선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기가 어려웠다.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55)씨는 “광주에서 만든 포크 계열 노래의 가장 큰 특징은 굉장히 서정적이면서도 가사가 현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고발한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최영경 동신대 교수(실용음악과)는 ‘광주지역의 대중음악인 활동사 연구’(2012년)라는 논문에서 “광주에서 생산돼 유행한 대중가요들은 광주항쟁의 아픔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담아 건전가요처럼 불렀으나 민중가요적인 요소가 다분한 대중가요였다”고 밝힌 바 있다.

김원중씨가 부른 ‘바위섬’(1984년·배창희 곡)은 5·18 당시 고립된 광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래였다. 전두환 정권 때인 87년 내놓은 그의 노래 ‘직녀에게’(박문옥 곡)는 발표 직후 금지곡이 됐다.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빌려 통일을 염원하는 문병란 시인의 시를 딴 가사 때문이었다.

광주의 가수들은 85년 <예향의 젊은 선율>이란 음반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대학가요제 수상자인 박문옥·김정식·김종률씨, 신상균(현 공무원)·김원중씨가 합작한 이 포크 음반에 ‘바위섬’이 실렸다. 김원중씨는 “전국 최초의 지역 음반이었다. 당시 음반은 서울에서만 만들었다. 이 음반을 ‘광주 음악’의 시발점으로 본다”고 말했다. 85년 창단한 음악그룹 ‘꼬두메’는 “광주 창작음악의 산실”이 됐다. 꼬두메 멤버 김순곤씨는 조용필씨의 노래 ‘고추잠자리’, ‘한강’ 등을 작사한 이다.

87년엔 광주에 녹음스튜디오 ‘소리모아’가 설립돼 음반 작업을 할 토대를 갖췄다. 소리모아 리더로서 77년 엠비시 대학가요제에서 ‘저녁무렵’으로 동상을 받은 박문옥(58)씨는 95년 음반 <광주여 우리 노래여!>를 내는 등 줄기찬 공연·창작 활동으로 광주 음악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꼬두메 한보리(본명 배경희)·오영묵씨는 2003~2004년 시와 음악, 그림을 함께하는 ‘포엠 콘서트’란 새 장르를 선보였다.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가 지난달 5·18 33돌을 맞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임을 위한 행진곡’ 원본 악보. 뉴시스
1980년대 광주에선 5월의 아픔을 알리려는 노래운동이 뜨거웠다. 82년 4월 광주에서 나온 <넋풀이-빛의 결혼식>이란 비합법 음반이 신호탄이었다. 대표적 민중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여기에 들어 있었다. 82년 2월20일, 5·18 항쟁 지도부 윤상원 열사와 광주 들불야학 동지였던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을 모티프 삼아 이들의 넋을 풀어주자는 노래극이었다. 광주지역 대학 연극반·탈춤반 출신인 전용호·김선출·임희숙·임영희·김은경씨 등 ‘광대’ 멤버들이 만들었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묏비나리’라는 시를 개작한 가사에 김종률씨가 곡을 붙여 ‘님을 위한 행진곡’(원제)이 탄생했다. 광주문화방송 프로듀서였던 오창규씨가 곡을 불렀다. 광주 북구 운암동 광주문예회관 대극장 앞 국악당 터에 있던 황석영씨의 자택 2층 방에서,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군용 담요로 창문을 가린 채 소형 일제 카세트녹음기로 녹음됐다.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가 지난달 5·18 33돌을 맞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임을 위한 행진곡’ 원본 악보.


80년대 광주의 대표적인 민중가요 창작자는 최근 타계한 범능 스님(예명 정세현)이었다. 정세현씨는 85년 광주민중문화운동협의회 홍보국장이던 고규태(54) 시인과 함께 음반 <광주여 오월이여>를 제작했다. 5·18 민중항쟁 모든 과정을 노래와 다큐멘터리 낭송 등으로 엮었다. 여기에 실린 정세현씨의 곡 ‘광주출전가’는 80년대 대학가와 거리시위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 가운데 하나였다. 고 시인은 “정세현·박영정·박선정·임종수 등과 모여서 광주의 진상을 오디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자고 결의했다. 제목이 ‘광주출정가’로 잘못 알려졌다. 정벌하러 간다는 출정은 제국주의적이지만, 출전은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는 의미”라고 회고했다. ‘전진하는 오월’은 고 시인의 가사에 화가 김경주(58) 동신대 교수와 박태홍씨가 곡을 붙인 노래였다. ‘오월 판화’로 잘 알려진 김 교수는 김남주의 시 ‘죽창가’에 곡을 붙였다.

87년 정세현씨가 주도해 결성한 노래패 친구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의연한 산하’ 등을 소리모아 스튜디오 등에서 녹음해 전국에 뿌렸다. 음악평론가 노동은 교수는 논문 ‘5·18과 음악운동’(2003년)에서 “정세현은 전통음악을 전공한 음악가다. ‘꽃아 꽃아’는 작품에서 전통음악의 장단을 현대풍으로 처리하고, 후반부에 굿거리장단과 육자배기 가락으로 넘실대는 작품이어서 여타의 노래 작품들을 더 풍요롭게 했다”고 평가했다. 93년 홀연히 출가한 정세현씨는 전남 화순 불지사에서 명상·염불·찬불 음반을 만들며 음악을 통한 수행활동을 하다가 뇌출혈로 지난 13일 입적했다. 고 시인은 “범능 스님은 행진곡풍의 운동가요 대신 민중가요에 눈물과 물기가 묻어나도록 서정성을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89년엔 전남대 출신 박종화(50·시인)씨가 ‘지리산’, ‘투쟁의 한길로’ 등을 작곡해 노래운동에 힘을 보탰다.

광주에선 대중음악과 민중가요가 거리에서도 만났다. 가수 김원중씨는 89년 전국에서 처음 길거리 공연을 시작했다. 실내 5월 추모공연 때마다 “5월을 알 만한 사람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거리 공연을 떠올렸다. 이듬해 금남로 광주가톨릭센터 앞 5월 추모공연으로 확대됐다. 전국의 노래패가 모였다. 공연의 전국화가 이뤄진 셈이었다. 그 이듬해부턴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 전야제 문화공연으로 이어졌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광주의 노래운동은 다소 주춤해졌다.

그런데 올해 들어 박근혜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 시도’가 다시 광주의 노래를 되살리고 있다. 5·18 단체 등은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이 노래를 5·18 기념식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국가보훈처에 촉구하고 있다. 5·18 33돌인 올해 5월 일부 종합편성채널이 ‘5·18 북한군 개입설’을 다시 꺼내고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씨가 1670억여원 추징금을 내지 않고도 편하게 사는 현실이 ‘역사의 기억’에 불을 지핀 것이다.

2011년 5월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광주시는 광주가톨릭센터에 ‘5·18 기록관(아카이브)’을 조성하고 있다. 바로 이곳에 5월 광주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120여곡도 전시될 참이다. 이경률(52) 광주시 인권담당관은 “지난달 이전한 광주가톨릭센터에 5·18 노래를 모으고 시민들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선태(58)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도 “5·18의 기억을 공유하고 전승하는 데 노래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지하 1층 소극장이 91.64㎡(56석)로 소규모라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김원중씨 등은 “5·18 기록관이 기록을 단순히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공연을 상시화해 젊은 세대가 80년 광주를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미술 속 세상]존 콜리에의 ‘레이디 고다이버’

“세금 낮춰달라” 벌거벗은 여인

변길현


▲ John Collier, `Lady Godiva’ 142.4×183cm, 1898.

 가수 김원중 씨가 기획하는 빵 만드는 공연이 매달 네 번째 주 월요일 저녁에 빛고을문화관에서 개최된다. 음악만 있는 공연이 아니라 문학과 미술까지 참여하는 복합적인 공연이다. 이 공연의 수익금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빵을 만드는 데 쓰인다고 한다. 그래서 매달 하는 공연이지만 공연제목은 언제나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이다. 공연의 주제는 매달 다른데, 이번 달의 주제는 ‘레이디 고다이버(Lady Godiva)’이다.

 
김원중의 빵 만드드는 공연과 공동체 정신

 ‘레이디 고다이버’는 11세기 경 유래된 잉글랜드 코벤트리(Coventry) 지방의 전설이다. 레이디 고다이버는 원래 앵글로색슨족 출신의 귀족이었으며, 그 지역의 영주 레오프릭(Leofric)의 부인이었으며, 젊고 아름다웠으며 신앙심과 애민정신 또한 높은 것으로 전설은 전한다. 그녀의 남편인 레오프릭 영주가 자기 통치 지역의 농노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물리고, 같은 앵글로색슨족 농노들의 탄원이 빗발치자, 레이디 고다이버는 자신의 남편에게 세금을 낮춰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부인의 요청을 비웃고 거절하던 남편은 설마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부인이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부인의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레이디 고다이버는 고민 끝에 남편의 제안을 수락하고, 이 소식은 코벤트리 전 지역에 퍼지게 된다. 코벤트리의 지역민들은 이 소식을 기뻐함과 동시에, 그녀의 높은 뜻을 존중하여 거사가 행해지는 날에는 지역민 어느 누구도 바깥에 나가지 않음은 물론이고 바깥을 내다보지 않기로 약속한다. 공동체를 위한 레이디 고다이버의 결정이었고, 지역의 공동체는 또 다른 공동체적 윤리의식으로 그녀에게 보답한 것이다. 결국 그녀는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탄 채 코벤트리를 돌았고, 그녀의 용기있는 행동에 놀라고 감동받은 남편은 세금을 경감하여 평화로운 지역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옛날이야기이다.

 
 관음증 극복한 공동체적 윤리

  이 전설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이 전설에서 재미있는 단어가 만들어진다. 벌거벗은 레이디 고다이버가 마을을 돌 때 마을 공동체의 약속을 깨고 양복재단사 톰(Tom)이 창문 틈으로 그녀를 엿보다가(peeping) 그만 천벌을 받아 눈이 멀었다고 한다. 그래서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몰래 엿보는 관음증적 사람을 영어로는 Peeping Tom이라고 한다.

 전설이란 것이 역사상 있었던 어떤 일에서 시작하여 말 그대로 ‘전설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민중들의 바람이 들어있다. 실제로 영국 잉글랜드의 중부지역에 위치한 코벤트리는 해마다 이를 기리기 위하여 고다이버 축제를 개최하고, 이 도시의 대성당 앞에는 말을 탄 고다이버 동상이 서있다. 벨기에의 유명 초콜렛 회사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초콜렛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당연히 영국 미술가들이 이 좋은 소재를 놓칠 리 없다. 여성의 전신상이나 인물을 주로 그렸던 존 콜리에(1850-1934)라는 영국 화가는 미술사조상으로는 당대 뛰어난 초상화가 중의 한 사람이어서 토마스 헉슬리나 찰스 다윈 같은 유명인의 초상을 그리기도 하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야기에서 가져온 소재들을 그의 작품에 끌어다 쓰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뱀이 이브의 다리를 휘감고 있는 모습을 그린 ‘릴리스’(Lilith, 1892)와 이번에 소개하는 ‘레이디 고다이버’(Lady Godiva, 1898)이다. 레이디 고다이버를 소재로 그린 그림은 여럿 있지만, 그 중 이 작품이 제일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된다. 간결하고 고전적인 구도, 그녀의 마음을 표현하려는 듯 가슴을 가린 손과 가녀린 몸, 말을 덮고 있는 붉은 천은 그녀의 고귀한 신분과 희생정신을 상징한다.

 
 북녘 어린이 돌보는 빵공연에 감사

 영국은 역사적으로 공동체정신을 중요시하는 나라였다. 경제적인 의미에만 공동체정신이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예의에 있어서 공동체정신이 더 중요한 것이다. 영국에서 유독 예의범절이 강조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이런 영국도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 공동체정신이 붕괴되고 오로지 경쟁뿐인 사회가 되고 있는데 대한 고민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 비하면 영국은 그야말로 양반인 것 같다. 영국은 레이디 고다이버로 상징되는 지배자의 자기희생을 기리기라도 하지 않는가.

 암울하기만 한 이 시대에,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가난한 북한 어린이까지 생각하는 김원중 씨의 마음이 고맙다. 김원중 씨의 빵 만드는 공연이 한국의 고다이버 축제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광주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정신을 기릴 수 있는 전설이 될 것으로 믿는다.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폭염 속에도 바람은 있다"



29일 광주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공연에서 가수 김원중씨가 열창하고 있다. 리인천사진작가 제공


'힐링의 장'이 된 59회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성황'
지역예술인 자발적 참여… 기부금은 북한 성금으로

누구나 힘들고 지칠 때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힘을 얻은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음악은 때로 우리에게 편안한 안식을 주기도 하고, 힘을 주기도 하며, 위로를 주기도 한다.

‘김원중의 달거리’공연은 이런 음악처럼 편안한 안식을 주는 무대였다.

따뜻하고 포근한 미술작품을 무대배경으로 재즈와 샌드 애니메이션(sand animation), 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무더위에 지친 관객들의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난 29일 오후 7시 30분 광주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공연이 열렸다.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이 공연은 2005년부터 4년간 중단 중단됐다가 2010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이번 무대는 59번째 공연으로 ‘폭염 속에도 바람은 있다’란 주제로 펼쳐졌다.

이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입장료가 없다는 점이다.

공연장 앞에는 여느 공연과 달리 티켓을 끊는 곳도 티켓을 확인하는 진행요원들도 없다.

100퍼센트 무료 공연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기부함만 놓여 있을 뿐이다.

공연을 보기전과 공연이 끝난 후 놓이는 기부함에 자신이 내고 싶은 만큼만 낼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모아진 기부금은 전액 북녘 어린이 빵공장 사업본부에 성금으로 전달된다.

그림 작가 이율배씨의 꽃과 나무, 물고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배경으로 시작된 첫 번째 무대는 강윤숙 재즈 트리오가 들려주는 감미로운 재즈음악이었다.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 그리고 바이올린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감미로운 선율을 관객들에게 들려줬다.

그리고 관객들이 미리 신청한 음악을 들려주는 '프롤로그의 노래배달'이 뒤를 이었다.

혼성 3인조인 프롤로그는 이날 ‘한 어머니가 군대 간 아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라며 신청한 ‘여행을 떠나요’를 비롯해 관객들이 신청한 ‘고래사냥’,‘할아버지와 수박’을 열창했다.

또한 화가 주홍씨가 ‘바람과 별이 된 사람’을 주제로 돈 맥클린의 노래 ‘빈센트’에 맞춰 샌드 애니메이션을 선보여 관객들의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이달의 초대 손님으로는 노래 ‘빙빙빙’의 주인공 가수 하성관씨가 나와 자신의 히트곡을 비롯해 가수 김원중씨와 ‘모모’를 함께 부르며 관객들을 추억 속에 빠져들게 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김원중씨가 장식했다.

김원중씨는 자신의 대표곡인 ‘바위섬’을 시작으로 ‘바다가 보이는 찻집’, 관객들과 함께 ‘진주조개잡이’, ‘조개껍질 묶어’, ‘저 별은 나의 별’을 메들리로 함께 불렀다.

이어 김광균 시인의 ‘눈 오는 소리’에 곡을 붙인 ‘설야’와 무등산을 보며 만들었다는 경쾌한 리듬의 ‘춤춘다’, ‘직녀에게’를 연달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추억과 감동을 함께 선사했다.

관객 이지연(53·여)씨는 “예전에 즐겨들던 노래들을 다시 들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며 “젊었을 때 기억도 다시 나고, 요즘 더위에 기운도 없고 그랬는데 음악을 들으니 힘이 절로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달 60회를 맞는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은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제1회 광주평화음악제의 개막공연으로 열린다. 초대가수로는 ‘담다디’의 가수 이상은씨가 나올 예정이다.


도철원기자 zmd@chol.com

 
 

다 다른 우리들 모여서 평화 한그릇

제1회 광주평화음악제




‘평화'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이런 질문에 대부분 비둘기를 떠올리더군요.
그리고 또하나 ‘평화'의 이미지로 ‘전쟁'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전쟁이 없는 지금 당신은 평화로우신가요?
전쟁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죠.
한반도는 아직도 분단국가이고 세계 곳곳에선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전쟁의 포성이 들리고 있습니다.
잘 사는 나라이든 못 사는 나라이든 자주국방이라는 미명하에 남보다 더 좋은 살인무기들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있지요.
극도의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기를 들지 않고 군복을 입진 않았지만 타인을 이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봅니다.
마치 전쟁터의 군인들처럼 말이죠.
한번쯤은 일상에서의 평화를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상에서의 평화를 생각해보자고 말 건네는 음악제

이런 물음을 던지는 음악제가 있다.
‘평화, 멈출 수 없는 노래’를 주제로 8월26일∼30일 빛고을시민문화관과 사직공원 음악거리에서 열리는 제1회 광주평화음악제. 한 달에 한 번씩 ‘달거리공연’을 지속적으로 쌓아온 가수 김원중씨가 그 중심에 섰다. ‘달거리공연’의 다른 이름은 ‘빵 만드는 공연’이다. 공연의 수익금은 북한의 빵공장으로 건너가 북한 아이들의 허기를 채워줄 빵으로 변한다. 그러니 그의 노래와 공연은 이미 오래 전부터 평화를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이었다.
민주·인권·평화도시를 자처하는 광주. 그 광주로부터 발신할 수 있는 평화의 의미는 뭘까, 오래도록 생각해온 터다.

“오월항쟁 직전의 평화적인 횃불시위나 오월항쟁 기간에 보여준 광주시민들의 평화정신을 들 수 있겠다. 총으로 무장한 상황이고 무정부상태인데도 주먹밥을 만들어 함께 나누고 한건의 약탈이나 강도사고도 없었던 평화공동체를 이루지 않았는가. 세계사에도 그런 유례는 없다. 그 위대한 평화의 정신을 우리 마음 속에 일상 속에 다시 불러왔으면 하는 바람을 노래에 실어낼 것이다.”

80년 오월의 폭압 속에서 오히려 대동세상의 아름다움을 일구어냈던 광주에서 부르는 ‘평화’의 노래다.
이 음악제를 두고 그가 평화와 더불어 방점을 찍는 또하나의 가치는 광주라는 지역이다.
“중앙, 지방 써놓고 대개 부등호를 중앙 쪽으로 친다. 중앙 혹은 서울에 뺏기거나 매몰되는 지역의 정서와 감성, 잠재력들을 발견하고 살려내고 싶다.”

‘지역에서 노래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대답해 왔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소개할 때 ‘광주를 지키고 계시는’이라고 소개하는데, 정확히 표현하면, ‘광주에 영원히 빨대 꽂아놓고 광주에 기대어 기생하고 있는’ 김원중이다.

광주의 자양분을 먹고 살고 광주에 신세지고 살고 있다. 서울에서 살고 서울에서 활동하면 서울이 요구하는 또다른 정서와 규격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을 썩 잘하지 못한다. 이 지역에서 나고자란 사람으로서 지역의 언어와 정서를 담아내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싶다. 이 지역의 언어와 정서라면 내가 여기 있을 때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도 늘상 먹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광주평화음악제 역시 광주의 개성과 지향이 발현된 공연을 꿈꿔온 결과물이다.



김원중 한보리 백창우 류형선 홍성담 주홍 등 참여

첫날(8월26일 오후 7시30분) 개막공연은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로 꾸려진다. ‘빵 만드는’이란 공연취지에 이미 ‘평화’가 명징하게 담겨 있다.
출연진은 김원중을 비롯 소프라노 유형민, 혼성트리오 프롤로그, 화가 홍성담, 미디어아티스트 진시영 등 다채롭다. 화가 홍성담의 그림이 무대배경으로 사용된다. 그의 대표작들은 물론 평화음악제를 위해 그린 신작들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또 오래 전부터 ‘달거리공연’에 동참해온 화가 주홍은 샌드애니메이션으로 평화를 실어내며, 초대손님으로는 가수 이상은과 시인 김선우가 출연한다.
“달거리공연을 2년 하고 잠시 쉰 적이 있다.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혼자 하니까 더 이상 보여드릴 게 없어서였다. 아무리 뜻이 좋더라도 공연 내용성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했다. 그래서 멈췄는데 다시 시작하면서는 각 장르별로 동지들의 힘을 빌었다.”
달거리공연을 통해 장르를 넘어 쌓아온 연대가 이번 음악제 기획에도 빛을 발했다.

둘째날(8월27일 오후 7시30분)에는 ‘평화 빚는 가락’이란 주제로 국악공연이 펼쳐진다. 국악작곡가 류형선이 연출하는 이 공연에는 판소리 명창 윤진철, 퓨전국악팀 그림(the 林), 광주의 국악실내악단 ‘황토제’가 참여한다.

셋째날(8월28일 오후 7시30분)에는 동요공연(연출 백창우)이 펼쳐진다. 주제는 ‘다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나는 차별과 소외를 넘어 ‘다 다르다’는 눈길로 평화를 꿈꾼다. 시인 김용택, 화가 주홍, 백창우와 굴렁쇠 아이들, ‘노래하는 그림책 작가’ 나비연 등이 출연한다.

넷째날(8월29일)에는 무대를 벗어나 거리로 달려간다. 통기타 라이브의 본산인 사직공원 음악거리에서 ‘소곤소곤 노래소리’라는 제목으로 프린지공연(연출 이금영)이 열린다. 돌담, 트윈폴리오, 꿈의대화, 사직골, 유미랑의 노래발자국, 추억찾기, 카사비앙카, 햇빛촌 등 사직공원 거리의 음악카페들에 펼치는 평화. 그 핵심은 ‘소곤소곤’에 있다. 노래방기계 같은 전자음이나 너무 큰 소음으로부터의 해방. 음향기기와 반주기를 사용하지 않는 공연이 펼쳐진다. 기타 한 대를 서로 돌려가며 노래하고 또 경청하며 모르는 사람끼리도 한순간에 노래로 하나 되던 예전 사직골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기획했다.

마지막날(8월30일 오후 7시30분) 무대는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마무리된다. ‘평화 한 그릇’이란 주제의 가요공연이 한보리의 연출로 꾸려진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한보리, 백창우, 류형선, 김원중 등이 평화를 노래하는 창작곡들을 선보인다.
공연 입장료는 자신이 보던 책 한 권이면 된다. 모아진 책들은 제주 강정마을 평화도서관에 기증된다. 함께 ‘평화’를 부르고 느끼고, 또 ‘평화’를 향한 작은 실천을 할 수 있는 기회다.
글 남신희 기자

공연문의: 010-3670-5802, 홈페이지: 평화음악제.com

발제: 전라도닷컴- 문화야 놀자 /http://jeonlado.com

 
 

김원중의 달거리





빵 만드는 공연-김원중의 달거리를 함께하며...


주홍 (화가, 샌드애니메이션 작가, 재단 운영위원)


광주 5월 정신이 통일로 이어지는 공연

2009년 겨울, 가수 김원중씨와 저녁을 먹으며 2010년부터 달거리를 다시 시작하는데 새로운 무대를 위해 미술인이 함께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들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공연이 이렇게 많은 전문예술가들의 무대가 될 줄 몰랐다. 참 솔직하게도 김원중씨는 이렇게 말했다. 2003년부터 매 달 무대를 혼자 해결하는 것이 힘들고 버거웠노라고... .

‘빵 만드는 공연’이라는 말은 그 자리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나는 2010년 공연부터 샌드애니메이션으로 매 달 재미있고 의미있는 창작공연의 무대에 합류했다.

2003년부터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시작된 '김원중의 달거리'는 올해로 11년을 맞이하면서 공연으로 모아진 성금 전액을 평양에 있는 북녘 어린이 빵공장에 빵 재료를 보내는 기금으로 보내고 있다. 2003년부터 모아진 기금으로 평양에 빵공장을 만드는 마중물을 마련하여 공장을 지었고, 2010년부터 모아진 기금은 빵 재료를 보내는데 전액 사용된다. 그래서 빵 만드는 공연이다.

나는 화가이면서 샌드애니메이션으로 매 달 새로운 무대를 준비해야했다. 이러한 창작 무대는 예술가에게는 기회다. 김원중의 달거리 무대는 나에게만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확장시켰다.

김원중의 달거리는 독자성을 지닌 무대다.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화가와 사진작가, 행위예술가, 미디어 아티스트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 무대를 함께 만든다는 것이다. 음악영역도 대중가요에서 클래식, 판소리 등 ‘줄탁’이라는 코너에서는 신진의 등용문 역할도 한다. 작곡가 김현옥, 명창 윤진철, 보헤미안소울의 피아니스트 이상록과 소프라노 유형민, 강윤숙 재즈 트리오, 프롤로그, 느티나무밴드 등 쟁쟁한 음악인들이 특정 장르의 벽을 허물며 무대에 참여한다. 게다가 김원중의 달거리 무대의 큰 특징은 무대 미술을 맡았던 한희원 화백의 제안으로 매 달 주제에 맞는 화가들의 작품들이 무대의 배경이 되어 거대한 화면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올해는 김해성 화백이 무대미술을 맡아 작가들을 선정했고, 문명호, 강동권, 김영태, 장현우, 이율배, 임근재, 정명돈, 박선주, 류재웅 등이 올해 무대미술작가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새로운 전시형식이라고 생각하며, 관객들은 광주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한 달에 한 번씩 큰 화면으로 20여 점 이상을 감상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달거리 공연은 가수 김원중을 중심으로 광주의 다양한 예술인들이 연대하고 만나며 새로운 시도로 함께 무대를 만드는 창조의 장이 되고 있다. 이 예술가들의 연대에는 광주만의 특이한 지점이 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발 벗고 나서는 문화가 자리 잡힌 도시이기에 가능한 무대인 것이다. ‘빵 만드는 공연’에서는 재능기부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무대에 오른다. 그토록 무대에서 까다로운 예술가들이 이 무대만큼은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멀리서 온 초대 손님들조차도 차비를 기부하고 가는 아름다운 무대가 바로 김원중의 달거리이다.

이제 이러한 평화와 나눔의 정신에 공감한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행동으로 김원중의 달거리는 광주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기본적인 팬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모임들은 매달 번개팅이나 모임장소로 달거리공연장에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수 김원중은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다양한 예술가들의 꿈으로 무대를 꾸미고 공연을 함께하는 스태프, 자원봉사자,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빵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꿈꾸는 무대, 김원중의 달거리. 노래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총을 내려놓게 하며, 작가들의 그림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는 무대인 것이다.

나는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이면, 북한 어린이들의 손에 있는 따뜻한 영양 빵을 상상한다. 그리고 이 공연이 광주에서 평양공연으로 이어지는 날을 꿈꾼다.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창' 26호 2013-9>


 
 

“광주 5·18 정신 담아 평양서 공연하는게 꿈”



“광주 5·18 정신 담아 평양서 공연하는게 꿈”

<문화도시 '예술의 별' - ‘빵 만드는 공연-달거리’10년
가수 김 원 중 >



전국 최초 지역음반 제작…가수로 운명 바꿔
‘벼락스타’ 10년 슬럼프 ‘달거리’ 탄생 원동력
공연 수익금 북녘에 전달 ‘광주 브랜드’ 자리



‘빵 만드는 공연 - 김원중의 달거리’(이하 달거리)가 첫발을 뗀 지 올해로 딱 10년이다.
공연 첫해였던 2003년과 2004년 모아진 성금 2,000만원은 북녘 어린이 빵공장 사업본부에 전달됐고, 평양 대동강변에 ‘북한영양빵공장’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달거리는 이후 5년간의 휴지기를 거쳤고 지난 2010년(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부터 매년 열리며 광주의 브랜드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다달이 한 번씩 노래로 앓고, 노래로 쏟아내고, 노래로 흐르고 싶다’는 의미로 출발한 달거리의 취지를 그저 잃지 않고 싶어 전진했을 뿐이란다.
지난 3월 첫 공연을 가진 ‘달거리’가 어느덧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11월 무대는 ‘멘토’라는 주제로 오는 25일 오후 7시 30분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다.


유난히 노래를 좋아하고 곧 잘 불렀던 김 씨는 주변사람들에게 항상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1년 재수를 하고 전남대 농업경제학과에 입학하게 되면서 음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대학에 들어와서 솔직히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대학 음악동아리 ‘로터스’와 대학 합창단에 들어가 노래만 열심히 불렀죠. 공부보다 노래가 좋았으니 그때부터 음악은 제 운명이었나 봅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 순간 의문이 생겼다. 왜 음반은 서울에서만 나오는지, 광주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큰일을 냈다. 광주 몇몇의 음악 선배들과 힘을 모아 전국 최초의 지역 음반을 만들었다. 음반 제작에는 가수 소리모아, 김정식, 김종률, 신상균 씨 등이 힘을 보탰다.

“광주만의 색을 담은 음반을 내고 싶었습니다. 획일화된 서울의 음악이 아니라 우리의 향토색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악을요. 광주지역 가수들이 모여 1985년 ‘예향의 젊은 선율’이란 음반을 독자적으로 만들었죠. 지역에서 음악은 낸다는 것, 아니 지역을 떠나 음반을 낸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울 만큼 기뻤습니다. 게다가 제 인생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았으니까요.”

하늘이 도운 걸까. 이들의 도전은 기적을 낳았다. 그 앨범에 수록된 노래 ‘바위섬’이 대중에게 인기를 끌면서 김 씨의 운명도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잠자고 나니 스타가 돼 있었다’는 말을 알겠더라고요. 사실 그땐 고시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한 번도 가수가 돼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대학교 앞에 있던 사대부고 여학생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옷이 찢기는 웃지 못 할 사건도 있었어요.”
철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수가 된 덕분인지 그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쉽게 가수가 돼서 그런지 가치관과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았다고 해야겠죠. 실력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방황은 시작됐습니다. 물론 가수를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졸업한 후에도 갈등은 계속 됐고 약 10여 년의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은 다행히도 그에게 값진 시간이 됐다.

“광주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군요. 그 당시 5월 광주, 소외된 광주를 위해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두 손을 불끈 쥐며 다짐했죠. 제가 가진 목소리로 아픈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어루만져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달거리’가 탄생된 계기는 이렇다.

“한일 월드컵으로 축제의 나날을 보냈던 2002년이었죠. 그런 축제 속에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일어났고, 미국의 한반도 전쟁을 부추기는 등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서로 적이 아님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기획한 게 ‘달거리’입니다.”

지난 2003년부터 공연을 시작하면서 어려운 점을 없었을까.
그는 “2년 가까이 같은 장소에서 한사람이 한정된 곡을 가지고 공연을 장기적으로 이끌어간다는 건 무리였어요. 그저 ‘의미가 있는 공연’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찾아오는 것이라면 더욱 싫었습니다. 공연이 좋아서 오는 것이 좋았어요. 의미 뒤에 숨어 노래한다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했습니다.”

그는 각각 다른 분야들의 예술가들과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계획하게 됐다.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처럼 그림, 재즈, 판소리, 샌드 애니메이션 등이 어우러지는 공연을 고안했다. 그리고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초대 손님과의 대화 코너도 집어넣었다.

특히 올해부터는 문화예술계 신인들을 소개하고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도 함께 마련해 상차림이 더욱 풍성해졌다. 무대 뒤에는 늘 그에게 힘이 돼주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무대 위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무대 뒤에서 나와 공연을 위해 힘써주는 스텝,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팬클럽 ‘느티나무’, 공연장 앞에서 구두닦이로 성금을 내어주는 후배 등 많은 사람들이 있어 공연이 더욱 빛날 수 있었어요.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인가 봐요.”
마지막으로 그의 꿈을 물었다.

“대형컨테이너 무대를 장착한 트럭을 가지고 휴전선을 건너 평양에서 공연하는 게 꿈입니다. 시베리아, 모스크바 그리고 독일 베를린 장벽에 가서 공연을 하는 거 생각만 해도 설레네요.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 광주의 5·18 정신을 싣고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과 베를린 장벽에서 맘껏 공연하고 싶어요.”


강승희 기자

 
 

'바위섬’처럼 광주다운 무대 만들어가는 가수 김원중




“딱히 스타일을 내진 않았는데, 어때 보여요? 어울려 보입니까? 그냥 이 모습이 편해서에요. 내가 편해야 다른 사람도 편해 보일테니까요.”
반쯤은 흘러내린 듯 뒤로 묶은 곱슬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청바지 차림의 50대 중년 남성. ‘바위섬’ 하나로 80년대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가수 김원중씨다.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는 여전히 기타를 메고 노래를 하는 가수였다.
‘달거리’ 공연을 마친 다음날 광주콘텐츠산업지원센터내 공동 음반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가수 김원중’이 아닌 ‘아티스트 김원중’으로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글 이보람 기자 사진 최현배 기자


북한 어린이 빵 만드는 무대 ‘달거리’

“마지막 비행기가 사라지며 하늘에 내어놓은 길 너머로 초승달이 지고 있습니다. 공항 옆을 흐르는 극락강변을 걷고 있습니다… 이 가을을 퍼 나르는 바람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와 살을 만집니다. 황홀해집니다. 가을의 주인인 바람과 통정하였습니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 월요일, 광주 구동 빛고을 시민문화관.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한 ‘달거리’에서 가수 김원중은 자신이 쓴 글로 먼저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이날 공연의 주제는 ‘바람과 바람 피우다’. 스텝들과 고심 끝에 주제를 정하고 한달동안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준비한 퍼포먼스와 노래공연, 전시 등을 아우른 ‘달거리’ 공연을 선보였다

매월 ‘김원중의 달거리’를 통해 팬들과 만남을 갖는 그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80년대 ‘바위섬’의 가수 김원중, 그대로였다. 어깨까지 닿을 듯한 곱슬머리를 ‘대충’ 묶고 회색빛 니트와 청바지 차림의 그가 무대에 오르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매달 무대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반가움이 가득 담긴 박수였다. 그는 ‘잊혀진 계절’을 부르며 화답했다. ‘바위섬’의 김원중은 그렇게 잊혀지지 않고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그는 ‘바위섬’으로 통한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었다. 그만큼 노래 ‘바위섬’은 아직까지도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남아 있다. 1985년 발표된 노래 ‘바위섬’(작사·곡 배창희)은 5·18 당시 고립된 광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래로 알려졌다. 모든 대중가요 활동이 서울에 집중돼 있던 당시 김원중을 비롯한 박문옥, 김종률, 신상균, 김정식씨 등 ‘사직공원 근처에서 노래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음반 ‘예향(藝鄕)의 젊은 선율’을 냈다. 지방에서 내는 첫 음반이었고, 여기에 ‘바위섬’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섬’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TV에 자주 등장하는 프로 가수로 데뷔했다.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전남대에 다니던시절 교내 그룹사운드 ‘로터스’에서 보컬을 맡아 노래 부르기를 즐겨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 잘한단 소리를 듣고 자랐고, 대학 다닐 때도 캠퍼스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던 게 일상이었지요. 노래 부르는 게 좋았지만 가수는 생각지도 않았었는데, 어쩌다 ‘바위섬’이 뜨면서 가수가 됐어요. 데뷔일은 1985년 1월 7일로 기억합니다. 스물여섯대학생 때였어요.




예술장르 소통하는 문화공연으로 성장

그는 ‘바위섬’ 이후 ‘직녀에게’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80년대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전두환 정권 때인 87년 내놓은 노래 ‘직녀에게’(곡 박문옥)는 발표 직후 금지곡이 됐다.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빌려 통일을 염원하는 문병란 시인의 시를 딴 가사 때문이었다. 3년여간의 화려(?)했던 생활을 접은 그는 90년대 이후 방송활동을 멈췄다. 하지만 이후 각종 공연으로 광주·전남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역량을 모으는데 앞장서고 있다.

“방송활동을 접고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공연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좁아요. 저에게는 서울동, 광주동, 부산동일 뿐이지요. 한 곳에 머무르는게 아닌 오고가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지금은 광주에 거점을 두고 생활하고 있어요. 나 스스로 ‘광주를 지키는 사람’, ‘광주에 영원히 빨대를 꽂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달거리’ 공연에 빠져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다.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열 차례 공연을 하고 수익금을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데 쓰고 있다. 2003년~2004년 2년 동안 공연했던 수익금 2000만원을 북녘어린이 빵공장 사업본부에 기부했다. 잠시 휴식기를 가진 그는 2010년 3월 2차 ‘달거리’로
돌아왔다. “노래를 가지고 벗님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통해 이 ‘달거리’가 지금 고통 속에 있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한 줌 사랑으로 흐를 수 있다면 큰 보람이겠습니다.”

‘다달이 한번 씩 노래로 앓고, 노래로 쏟아내고, 노래로 흐르고 싶다’는 그는 그렇게 매달 한번씩 상설공연을 통해 스스로를 채찍질해 왔다. 2차 공연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북한 어린이 빵만들기 김원중 달거리’라는 이름을 붙였지만‘예향’ 광주의 현 주소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예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예술 장르를 함께 무대에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다른 장르와의 소통, 나눔의 문화를 실천함으로써 경쟁력을 갖추고 싶었습니다. 관객들이 와서 보는 이 공연이야말로 ‘예향’ 광주의 현 주소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광주’와 ‘달’ 노래한 음반 준비

‘달거리’는 수년째 진행하는 상설공연이지만 매회 진화한다. 초창기 광주 남구 사동 자그마한 공간 ‘드맹아트홀’에서 통기타 하나로 시작했던 공연은 현재 빛고을 시민문화관 ‘제대로 된’ 무대 위에서 재즈와 클래식, 미술을 총망라한 종합문화공연으로 성장했다. 매회공연을 보는 이들은 ‘뭐 똑같은 공연 아니냐’ 하겠지만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스텝들의 노고와 진행위원들의 고심이 담겨 있다.
“10월 공연에 올린 영화는 ‘만추’였어요. 9분짜리 영상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겠지만 이 하나를 완성하는데 들어간 시간은 몇 배 이상입니다. 가을에 맞는 영화를 여러 편 놓고 하나씩 감상합니다. 그리고 나서 가장 어울릴 만한 영화 한편을 선택하는 거지요. 작품이 선택되면 처음부터 다시 감상합니다. 이번엔 영상과 함께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을 듣지요. 2시간짜리 영화를 9분으로 줄이는 작업도 결코 쉬운게 아닙니다. 어느 한 부분을 ‘땡강’ 자르면 영화의 흐름이 보이지 않아요. 부분부분 편집과정을 거치고 영화에 맞는 음악을 밴드들과 상의하며 새롭게 만듭니다.”
쉼 없이 뱉어내는 그의 목소리에 ‘달거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12월30일 올해 마지막 공연을 마치면 모아진 수익금을 북녘어린이들에게 먹일 빵 공장에 전달할 예정이다.
‘가수’ 김원중은 2차 달거리를 시작할 무렵인 2010년부터 곡을 만들고 노랫말을 적기 시작했다. ‘달거리’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또 하나의 이유다. “‘달거리’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봤어요.
‘달거리’는 한 순간도 가수로서 방심하지 않게 하는 장치입니다.” 그가 만드는 요즘 노래는 ‘광주’를 담고 있다. 광주천, 무등산, 장불재, 사직공원….

‘어머님의 손길 같은 장불재 바람은 지쳐버린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소리 없는 광주천은 내 거친 노래를 말없이 담아 묵묵히 흐른다/ 나를 위로하고 저는 지쳐버린 저 바람은 잠자리 떼 춤추는 노을 속으로 사라져가고 천변 길 걸으며 부르는 나의 거친 노래에 잠자던 잉어 한 마리 깜짝 놀라 튀어 오르는 아- 바람 너 였구나…’
(김원중 작사·곡 ‘광주천’ 중에서)

‘사랑 노래는 쓰지 않느냐’ 농담 삼아 물었더니 다소 진지한 답이 돌아온다. “이상하게 연가(戀歌)는 안 써지는 듯합니다. 써보고 싶긴 한데 써지지 않아요. 연가 비슷한 노래를 하나 만든 게 있는데,
제목은 ‘달이 예쁘다’에요. ‘저기 달 속에 너의 얼굴이 있네. 달이 예쁘다. 그 속에 너도 예쁘다… 달빛이 나를 적시고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감싸고, 그러나 저기 저 달은 멀어져가고 있네’ 이런 노랫말이죠. 저는 묘하게 달이 좋습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달이 보고파서 무등산에 오를 정도로 말이죠. 광주와 달을 담은 저의 다음 음반
은 내년 1~2월께 선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광주일보 문화예술매거진 예향 12월호





 
 

[공연 칼럼]기자수첩-김원중 달거리 공연 영원하길

김원중 달거리 공연 영원하길

자신의 직업 전문성을 살려 광주에 재능기부를 펼쳐온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3개월간의 휴식을 갖고 더욱 풍성한 상차림을 준비했다. 그 첫 무대는 19일 오후 7시 30분 빛고을 시민문화관.

가요에서부터 클래식, 국악, 그림이들어간 영상, 영화, 샌드 애니메이션 등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장르에 올해는 ‘몸짓’-김광철퍼포먼스(신체미술), ‘강윤숙의 재즈트리오’, ‘보혜미안 소울-이상록·유형민’, ‘새로운 얼굴을 소개합니다’ 등 재즈의 선율과 몸으로 펼치는 예술이 곁들여진다.

돈이 아니라도 지역에서 내놓으라하는 미술, 음악, 국악, 영화 등 각 분야의 중견 예술인들이 아무런 대가없이 매달 한차례씩 모여 신명한 한판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의미가 크다. 더불어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사랑을 전하자는 따뜻한 마음도 담아낸 참 착한 공연이다.

‘달거리 공연’은 다달이 한 번씩 노래로 앓고, 노래로 쏟아내고, 노래로 흐르고 싶다는 타이틀로 2003~2004년 시작됐지만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2010년부터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를 밀어주는 지역 예술인들이 숨은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광주였으니까.

매달 한 번씩 열리는 무대에는 약 50여명의 스태프가 투입되고 김원중은 초대 글과 함께 다음 달 공연의 주제를 생각해야 한다.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해야만 한다.

이 같은 고민에도 그들은 늘 행복하다. 공연 때마다 무대에 올라 샌드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주홍 씨는 새로운 창작의 기회와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 같은 행사를 치른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했다.

이와 함께 공연 후에는 19~24일 달거리 공연의 발자취를 들여다볼 수 있는 ‘리일천 사진기록 2011 달거리’ 전시가 빛고을시민문화관 1층 미디어큐브 338에서 오픈된다.

혼자 살아가기에도 바쁜 요즘, 이들을 지켜보면서 김원중은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그로운 봄날, 이제 추억을 쌓을 때다. 매달 셋째 주 월요일엔 김원중 달거리 공연을 찾아가자.

예술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곳, 따로 티켓을 예매할 필요도 없다. 대신 공연장에 비치된 모금함에 작은 정성을 보태면 되고 느끼는 대로 박수를 보내면 되니 금상첨화다.


강승희 문화부 기자 / 전남매일

 
 

[3월 공연리뷰](월간 광주아트가이드 4월호)

인터뷰 - 빵 공연 주도하는 '달거리'의 김원중
맛있는 음악! 신나는 빵! 아름다운 사람들!


매 달 세 번째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점점 늘어간다. 바로 '김원중의 달거리'공연이다. 삼삼오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몰려들고, 공연장 앞은 서로 인사를 나누기에 부산하다. '오늘은 무엇을 보여줄까?'부터 공연 주제에 대한 기대감에 대부분의 사람들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인사와 함께 등장하는 수준 높은 음악과 시, 그리고 그림으로 이어지는 무대에 공연장 안은 고요하기만 하다. 때때로 들리는 것은 차례가 끝날 때마다 들리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일 뿐이다.
'달거리'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을 도맡아 하는 김원중 씨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관람하러 오길 바란다."며 "지속적인 달거리 공연이야말로 어린이로 대표되는 세계의 평화와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참다운 의미일 것이다."고 설명한다.

부제 : 빵 공연은 평화로 이어지는 작은 길목
처음 시작은 김원중 씨 혼자였다. 물론 계기가 있었다. "내게 있어 노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방면의 기질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노래를 하며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내게 찾아온 노래는 그동안의 내 삶을 돌아보게 하였고 노래를 온 몸으로 받아들임으로 지금까지 내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고 귀띔한다.
이 지역의 명망 있는 통 기타 가수이면서 결코 시대의 역사성에서도 비켜서지 않은 음악인으로 정평이 나 있는 김원중 씨는 "노래를 받아들이며 시험과 자기강제가 필요했다. 스스로 나와의 약속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이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펼치는 일이었고, 이왕 공연하는 것이니 뜻 깊은 일을 해보는 것이 더 좋겠다 싶어서 시작한 것이 북한 어린이 돕기 빵 공연이 시작의 단초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2003년 시작한 빵 공연은 2004년, 발전적인 멈춤을 했고, 다시 2010년 사직동의 영상예술센터공연장에서 재개공연을 하면서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김원중 씨는 "혼자 하는 공연이다 보니 컨텐츠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시대가 바뀌어 남북교류가 활발해져서 내가 아니어도 북한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많아졌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2003년과 2004년 공연을 통한 2000만원 상당의 모금액은 '북한어린이영양빵공장운동본부'에 전달되었으며, 한창 재정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있던 이곳은 이 모금액을 계기로 2005년, 하루 만 개 이상의 빵을 생산하는 빵공장을 평양에 건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제 : 빵 공연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달거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 그 자체이다. 살아있음의 바탕이며 다시 미래를 향하는 생명을 키워내는 희망이기도 하다. 김원중 씨는 한 달에 한 번의 달거리 공연이 사람들에게 희망과 평화 또, 생명 그 자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달거리'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며 웃는다.
공연마다 색깔을 가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매 달 다른 주제로, 주제에 걸맞은 출연진들을 직접 섭외해 이야기를 끌어내어 관객들과의 소통을 꾀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와 살아온 모습과 그림이지만 결국은 한 가지의 주제 안에서 시작되고 매듭이 지어진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기에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주제들을 찾아 그 느낌을 고스란히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고 또, 향유하며 생명의 달거리를 이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변을 돌아보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휴머니즘을 찾아가는 길이다.
김원중 씨는 "그동안 함께 마음을 모아준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며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우리 스텝진 모두에게 감사할 뿐이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동안 달거리에 마음을 모아준 사람은 스텝 1000여명에, 총 출연자 수는 500여명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시 2012년. 달거리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노래뿐 아니라 몸 예술, 무용, 퍼포먼스와 같은 예술방면의 다양성을 추구했으며 신인코너를 마련한 것이 가장 눈에 보이는 변화이다. 김원중 씨가 직접 발로 뛰어 발굴해 낸 지역작가 중심의 신인들은 무대에 서서 다시 달거리의 정체성을 찾아갈 것이다.
또, 있다. 대한민국의 문화 원류인 남도만의 독특한 예술성을 스스로 정립해가는 일이다. 가장 뛰어난 원형의 보고임에도 경제적인 논리로 도외시되고 사장되었던 남도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시작의 일환으로 '김원중의 달거리'공연의 인터넷 방송을 기획, 준비해가고 있다.

범현이기자

 
 

[4월 공연리뷰](광주은행사보- 향기 있는 나눔 5월호.‘김원중의 달거리’)

Culture-stage/ 화제의공연-‘김원중의 달거리’



“시를 외우고 다니면 좋은 일이 일어나요. 꼭 로또를 맞은 것처럼요. 시가 노래가 되거든요.” 김원중씨가 소월 시에 곡을 부친 ‘진달래 꽃’을 불렀다. “여러분도 행복하고, 무대에 선 아티스트들도 행복하고, 우리나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그와 관객들이 함께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를 불렀다. 무대 뒤 대형 화면에는 푸른 바다와 붉은 해당화,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찬 하늘, 푸르른 산을 담은 그림들이 지나갔다. 음악이 흐르는 갤러리에 온 기분이었다. 그의 노래 전에는 판소리와 재즈, 퍼포먼스, 샌드애니메이션이라는 푸짐한 선물을 받았다. 지난 4월 16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빵 만드는 공연-김원중의 달거리’(매월 셋째주 월요일) 현장 풍경이다. 이날 공연의 주제는 ‘바람이 싹을 틔운다’였다.

김원중의 달거리
노래, 시, 그림이 만나는
‘참 광주다운’ 무대
지친이들에게 위로,
배고픈 이들에게 빵이 되는 공연

지역 예술인들 함께하는 무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달거리 공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수 김원중씨가 기획한 달거리 공연의 시작은 지난 2003년. ‘다달이 한 번씩 노래로 앓고, 노래로 쏟아내고, 노래로 흐르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됐다. 매달 한차례 주제를 정해 함께 노래하고,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 손님을 초대해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별한 지원 없이 서로 품앗이하며 60여명의 스텝이 만들어낸 음악회는 세상사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고, 음악회로 위로받았던 이들의 따뜻한 마음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또 다른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북한어린이영양빵공장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된 것이다.
2003년과 2004년 모두 24차례 진행됐던 ‘달거리 공연’은 아쉽게도 6년간의 긴 휴지기에 들어갔다.
다시 공연이 시작된 건 지난 2010년. 기존 무대였던 소극장 드맹아트홀을 벗어나 빛고을 시민문화관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공연의 규모가 커졌다. 2010년 시즌에는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의기투합, 멋진 공연을 만들어냈다. 소리꾼 윤진철, 작곡가 김현옥, 화가 주홍과 한희원씨 등이 참여했다.
2011년, 화가들은 매달 무대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그림을 제공하고, 주홍씨는 샌드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 작곡가 김현옥씨는 ‘해피 버스데이 변주곡’ 시리즈를 이어갔고 영화 속에 숨겨진 음악을 듣는 코너도 선보였다.
비슷한 포맷으로 진행되는 공연은 오래가기 어렵다. 김원중씨와 참여 예술인들은 늘 변화를 모색했다. 3월 시작된 2012년 달거리에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강윤숙 재즈트리오(피아노 강윤숙, 드럼 임민수, 베이스 임성광), 피아니스트 이상록과 소프라노 유형민으로 구성된 ‘보헤미안 소울’을 격월로 만날 수 있다. 몸의 언어를 들려줄 퍼포머 김광철씨가 참여하는 ‘몸짓’ 코너는 지역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퍼포먼스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올 시즌에서 가장 의미있는 코너는 ‘줄탁-새로운 얼굴을 소개합니다’다. 말 그대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후배 예술인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코너다. ‘눈 녹이고 봄 온다’라는 주제로 열린 3월 공연에서는 7인조 밴드 ‘세븐 마일즈’가 무대에 섰고 4월 무대를 장식한 팀은 ‘마인스 이어’였다.
“달거리 공연의 원칙 중 하나가 지역의 문화를 소개하고 발굴하는 것이죠. 저의 음악은 저의 음악이고, 뒤에 따라오는 후배들에게는 또 다른 정서가 있어요. 지금까지 무대에 서 온 아티스트들이 중견예술인들이 대부분이라 세대 간의 단절도 좀 느꼈구요. 이 무대가 열심히 하는 후배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됐으면 좋겠어요.”(김원중) 물론 이번 시즌에도 김원중과 느티나무 밴드(신현정·조성우·박우진·송기정) 주홍씨와 윤진철씨 등 기존 참여자들은 여전히 힘을 보태고 있다.
매달 이야기를 나누는 초대손님들은 달거리 공연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안도현·김용택·이원규·박남준·나희덕·도종환 등 시인들이 가장 많이 다녀갔고 가수 김용우·안치환·백창우는 노래를 들려줬다. 김두관 전 장관, 도법 스님, 발레리노 문영철, 도편수 박영곤 등 다양한 분야의 초청 인사들도 무대에 올라 세상사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했다.

수익금 전액 북한 어린이 위한 빵 만들기에 쓰여
달거리 공연은 지역 대표 브랜드로 탄탄히 자리잡았다. 또 지난 2010년 인천 공연을 진행하는 등 지역 바깥에도 입소문이 나 있다. 초청을 받는 곳은 많은데 광주에서 보여주는 규모와 퀄리티를 그대로 옮겨 공연을 진행하기에는 버거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 대안을 모색 중이다. 올해 달거리팀이 계획하고 있는 건 공연 실황 실시간 중계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콘서트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서다. 달거리 공연의 역사를 기록하는 아카이브 작업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면 지난 2003년 공연부터 사진자료가 잘 정리돼 있으며 공연 영상들도 직접 볼 수 있다.
지속적인 공연을 가능하게 한 힘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하는 예술인과 스텝들이다. 김원중씨가 먼저 손을 내밀면 공연의 취지에 공감한 이들이 다 손을 잡아주었다. “아이들 먹을 빵을 만들자는 데 거절할 수가 있나요”라는 한 예술인의 말처럼 다들 ‘달거리 공연’에 동참하는 걸 행복해 했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변화도 가능했다. ‘빵 만드는 공연’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행사 수익금 전액을 북한 어린이 빵공장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평양 대동강변 빵공장에서 하루 1만2000개씩 생산되는 빵 ‘옥류’는 북한 어린이들의 소중한 먹을거리다.
‘달거리 공연’에는 따로 티켓이 없다. 공연을 관람하고 난 후 로비에 마련된 모금함에 작은 정성을 모으고 있다. 200~2004년 시즌에는 2,000만원, 2010년에는 1,417만원을 모았다. 지난해에는 1,250만원을 북녘어린이 영양빵 공장 사업본부에 기부했다. 영양빵 7,500개를 만들 수 있는 액수다. 올 3월과 4월에는 331만원이 모아졌다. 5,000원이면 영양빵 30개를 만들 수 있다. 오는 5월 21일 열리는 5월 공연에는 특별한 초대손님이 찾아온다. 일본의 유명한 노래운동 단체인 ‘우타고에’의 전 대표 고바야시 히까루씨다. 우타고에는 5·18문화행사에 꾸준히 참여하는 등 광주와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달거리 공연의 특별한 즐거움, 화가들의 무대그림
달거리 공연의 또 다른 즐거움은 무대를 장식하는 그림들이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화가들이 작업한 그림들은 단순한 무대 배경을 넘어 또 다른 감동을 전한다. 지금까지 작가들은 ‘쌀 한톨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 ‘보듬어 주기’, ‘상처’, ‘용, 너 잘 만났다’ ‘꽃이 하는 말’ 등 김원중씨가 내놓은 주제에 대해 다양한 그림으로 화답했다. 지난해에는 조진호·오견규·임남진·김해성·신양호·최재영·한희원·고근호씨 등이 참여했다. 올해는 김해성씨가 무대미술을 맡았고 매달 강남구·조근호·박구환·백준선·이존립·전현숙·정용규씨의 그림을 만난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중에 고른 20여장의 그림들은 공연 내내 다양한 배경화면으로 관객들과 함께한다. 지난 연말에는 달거리 무대를 장식했던 그림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회도 가졌다. 사진작가 리일천씨는 달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저장하는 사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초에는 카메라에 담긴 1만여 장의 사진 가운데 고른 300여장으로 ‘2011 달거리’전을 갖기도 했다.

<김미은 광주일보문화부장>

 
 

[5월 공연리뷰]붉은 장미 한 송이...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붉은 장미 한 송이...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김원중의 달거리' 열려... '무등산 천황봉' 주제로 한 5월의 노래 공연




"오월정신을 계승하고 승리의 오월을 노래하자는 의미에서 5월 영령을 모셨다".

21일 오후 열린 한 음악회에 특별한 초대 손님들이 자리했다. 바로 '오월 영령'들과 14년째 오월행사 주간에 광주를 방문, 5·18묘역 참배와 공연을 하는 고바야시 히까루(小林 光) '일본 우타고에전국협의회' 국제교류위원이 그들이다.

5·18민주화운동 32돌을 기념하는 행사가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열린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음악회는 '오월 영령석'을 마련했다.

빨간 장미 송이로 대신한 오월영령석... "슬픔 아닌 승리의 노래"


오월 영령들을 대신해 빨간 장미 한 송이가 놓여졌다. 가수 김원중은 "슬픔을 애도하는 하얀 색 국화를 대신해 빨간 장미를 놓은 것은 승리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며 "오월 영령들을 초대한 것은 그 의미를 되새기자는 의미다"고 말했다.

그는 "고바야시 히까루 우타고에 국제교류위원은 지난 1998년 인연을 맺은 이후 자비를 들여 5·18 참배단을 모집해 광주를 방문하고 전야제 무대에서 5월의 노래 등을 공연했다"며 "14년째 지속되고 있는 방문과 공연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더 폭넓은 문화교류를 바라는 마음에서 초대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올들어 세번째를 맞은 이날 달거리 음악회는 '무등산 천왕봉'을 주제로 '5월 광주'를 다양한 음악과 예술로 표현했다.

김원중은 "무등산은 오월과 함께 광주의 상징이면서 한편으로는 정상에 미사일 기지가 있어 분단 현실을 상징한다"며 "무등산 정상을 시민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오를 수 있고 시민이 품으로 안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무대 배경도 무등산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오월을 묵묵히 지켜봐 온 무등산이 시민들의 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 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무등산 천황봉이라는 상징에 담은 것이다. 매회 특별한 초대손님이 출연하는 이번 달거리 음악회에는 한 일본인이 초대됐다.

"광주의 5월 통해 인권·평화의 의미 배웠다"


공연 마지막 순서를 앞두고 출연한 고바야시 히까루 국제교류위원은 김원중과의 대담을 통해 "김원중을 통해 99년부터 광주를 방문하는 등 교류를 시작해 5·18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면서 "광주의 5월을 통해서 인권·평화·사랑의 마음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시민들의 인권·평화·사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느꼈고 이것이 지속적으로 광주로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며 "김원중을 비롯한 많은 분들(민중가수)의 열정이 일본의 젊은이들을 자각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날 고바야시 히까루 위원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 일본 우타고에와의 교류 추진, 민주·평화·인권을 위한 콘서트 개최, 한일문화교류 증진 등 공로를 인정받아 광주광역시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고바야시 히까루 위원은 감사패 수여에 대해 "미비한 일을 한 것인데 광주로 부터 감사패를 받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공연은 소리꾼 윤진철의 소리마당, 피아니스트 이상록 씨와 소프라노 유형민 씨로 구성된 '보헤미안 소울'의 <봄날은 간다.> 등 5월 광주를 노래했다. 또 지역에서 활동하는 신인들을 소개하는 '줄탁' 코너에서는 제1회 오월창작가요제 대상팀인 그룹 '보이스 홀릭'이 출연해 수상작인 <내일을 위한 행진곡>과 신곡 <심장은 없어>를 열창했다.

행위예술가 김광철씨는 '언어의 꽃'을 주제로 퍼포먼스를 펼쳐 언론의 왜곡보도를 꼬집기도 했으며 화가 주홍씨는 샌드 애니메이션을 통해 5월 정신의 계승을 바랐다. 김원중은 피아니스트 이상록의 반주에 맞춰 80년 당시 외로운 섬이 된 광주를 표현했던 <바위섬> 등을 열창했다.

한편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음악회는 지난 2003년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24회 개최됐으며, 지난 2010년부터 다시 시작됐다. 현재 공연은 매달 셋째주 월요일 저녁 7시30분에 빛고을 시민문화관(구 구동실내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다.



<강성관기자>

 
 

[6월 공연·인터뷰]아시아문화중심도시 취재기대학생기자단

문화행사 / *-대학생기자단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아 6월을 노래하다”
‘김원중의 6월 달거리 공연 현장으로 가다.’
취재 : 나찬웅(글) 양세움(사진) 정명길(영상) / 편집 : 김아름




2012년 6월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25일 광주 남구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려 시민들과 함께했다.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무료로 펼쳐지는 이 공연에는 <바위섬>, <직녀에게>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실력파 가수 김원중 씨의 노래 외에도, 초청된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준비한 프로그램들이 함께 어우러져 시민들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 날 공연의 큰 주제는 ‘한반도의 평화’였다. 저녁 7시 30분,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무대스크린에는, 6월에 피어나는 한반도의 활기찬 생명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란 비극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김원중 씨의 호소가 담긴 에세이가 비추어졌다. 첫 공연은 지휘자 임흥규 씨의 노련한 지휘 아래, 광주예향실내악단이 연주를 맡았다.

모차르트의 알렐루야와 어메이징 레이스가 연주되었고,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영화 ‘플래툰(1986)’의 ost인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영상과 함께 합주되어 관객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전했다. 뒤이어 진행된 강윤숙 재즈트리오의 연주와 김광철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는 관객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화가 ‘주홍’씨가 모래를 이용하여 참신한 소재들을 샌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무대 스크린에 그려내자 일부 관객들은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날의 피날레 공연은 김원중 씨의 노래로 장식되었다. ‘느티나무’와 ‘직녀에게’ 외에도 일본 민중가요 단체인 ‘우타고에’팀이 작곡하고 김원중 씨가 작사를 맡은 ‘소원’이 공연장에 울려퍼졌고 6월 달거리 공연도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달거리 공연에는 혼자 온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 그들은 가볍게 즐기러 왔는데 풍성한 볼거리를 즐기고 따스한 감성까지 안아 갈 수 있었다며 매우 흡족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은 이제 매월 셋째 주 월요일이 아닌 마지막 주 월요일에 열리며 다음 공연은 7월 30일 월요일, 저녁 7시 30분에 펼쳐지며 앞으로 더 멋진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김 원 중 (가 수)
▲ 달거리 공연이 지니는 궁극적인 의도는 무엇인가?

달거리라는 말 자체가 매달 이루어짐을 뜻한다. 가수가 매달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 ‘게으름’이란 것을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지닌 능력이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사실, 2002년 효순?미선이 사건 때 느낀 바가 많았다. 분단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전쟁에 대한 공포를 실감하였고, 우리 스스로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 이번 달 공연의 주제는 무엇인가?

6월은 한반도에서 가장 푸르고 생명력이 왕성한 달이다. 왕성한 에너지가 잘못 쓰여 6.25전쟁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고 6월 항쟁, 한일월드컵 4강 진출과 같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평화’를 주제로 삼았다.

▲ 아시아문화중심도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5.18정신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하고 고결한 정신이다. 민주화운동 기간 중 민간인을 향한 약탈?방화와 총기은닉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민의식과 민주정신이 살아 숨 쉬는 광주는 이미 아시아를 넘어 세계 속의 광주이다. 광주정신과 예술이 잘 아우러져 한반도, 아시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리고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This is 광주 in the world'이다. 그리고 전당에 광주가 빠져서는 안 된다. 광주의 정신, 광주의 예술가, 광주의 작품들이 중심이 되어 전당을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다. 세계 속에 광주가 분명히 각인될 수 있고, 남도 문화의 원형질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보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대학생기자 취재일: 6월 25일)


문화행사 / *-대학생기자단

 
 

[7월 공연리뷰]'작가·화가·음악 한마당'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현장

'작가·화가·음악 한마당'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현장
종합선물세트 같은 공연
3월부터 시작…연말까지 매월 1회
다양한 지역예술인 참여 알찬 무대
공연 성금 '北어린이 빵공장' 기부




1980년대 어린이들이 받고 싶었던 선물은 단연 종합과자선물세트였다. 커다란 상자 안에는 갖가지 과자와 사탕, 초콜릿 등이 보기 좋게 놓여 있다.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종합과자선물세트의 추억을 되살려냈다.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무대미술을 배경으로 국악과 재즈, 샌드 애니메이션(sand animation)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공연이 무대를 채웠다.

지난 30일 오후 7시30분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열렸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달거리 공연은 이날 '휴식'이라는 주제로 다섯번째 무대의 막을 올렸다.

공연시간이 임박해져오면서 여타 공연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티켓을 파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없다. 김원중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입장료가 없는 것으로 대신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뒤 출입구에 마련된 모금함에 소정의 기부를 한다.

이렇게 모아진 기부금은 북녘 어린이 빵공장 사업본부에 성금으로 전달된다.

어느새 객석이 채워지고 판화가 박구환씨의 작품이 무대의 벽면을 채우면서 무대가 시작됐다.

박 씨의 작품에는 무대에 오르는 이들의 대한 소개와 공연 내용이 담겨 있어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국악인 정선심씨가 단가 '사철가'와 심청가 中 '황성 올라가는 대목'을 구성지게 뽑아내자 객석에서 박수 장단과 추임새가 터져나왔다.

이어 강윤숙 재즈트리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와 가요 '제주도 푸른밤'의 연주가 이어졌다.

공연에는 지역의 신예로 주목받고 있는 예술인을 소개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날은 첼리스트 박효은씨가 지역 유망주로 소개돼 아름다운 첼로 선율을 선보였다.

또한 화가 주홍씨가 '한 여름밤의 꿈'을 주제로 샌드애니메이션을 선보여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7월의 초대손님으로 등장한 동요작곡가 백창우씨는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면서 다양한 동요를 선보이는 등 마치 음악 토크쇼에 와 있는 편안함을 만들어내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김원중의 느티나무'가 맡았다.

김원중씨는 대표곡 '바위섬'을 비롯 '바다가 보이는 찻집', '숲 속의 작은 집' 등 밴드 연주와 함께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관람객 김시원(37·여)씨는 "지인을 통해 김원중 달거리 공연을 알게 돼 매달 공연장을 찾고 있다"며 "공연의 취지도 좋지만 공연을 채우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관객 이지선(29·여)씨는 "김원중 공연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여타 공연에 비해 공연 관람 문화도 좋고 무대를 채우는 프로그램도 풍성해 보고 나면 뿌듯해진다"며 "더욱이 질 좋은 공연을 보고 낸 성금이 좋은 일에 쓰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래도록 공연이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실시되고 있는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는 12월까지 매월 마지막 월요일 오후 7시30분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다.

올해 공연은 8월27일과 9월24일, 10월29일, 11월26일, 12월31일에 잡혀 있다.

한편 김원중 달거리는 광주시 인터넷 방송 GTN(http://tv.gwangju.go.kr)에서도 볼 수 있다.

김현주 기자(무등일보)

 
 

[8월 공연·인터뷰]문화나눔 확산 앞장서는 김원중씨

문화나눔 확산 앞장서는 김원중씨 "평화 염원 담은 공연 평양서 하고파"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열린 지난 30일 빛고을 시민문화관 출입구에는 입장료 대신 소정의 기부를 할 수 있는 모금함이 마련돼 있다.

광주 포크레전드라 불리는 김원중(53)씨는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를 통한 재능기부 뿐 아니라 공연으로 모아진 성금을 북녘 어린이 빵공장 사업에 기부하는 등 나눔 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03년과 2004년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시작된 김원중의 달거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속되고 있다.

김 씨는 "달거리 공연은 작가로 치면 개인전을 여는 것처럼 스스로 갈고 닦은 기량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스스로가 게을러지지 않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다"며 "또한 공연을 통해 남북의 분단과 전쟁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모으고 한반도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공연의 목적을 밝혔다.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의 가장 큰 볼거리는 지역 작가와 화가, 음악인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이 참여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씨는 매달 새로운 주제와 무대 프로그램을 구성해 다채로운 무대를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는 "2002~2003년 당시에 혼자서 무대를 꾸려나가면서 한계에 봉착했고 무대를 구성하는 새로운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이러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차에 광주지역 예술인들이 국가대표급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달거리 공연에 어우러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예술인들이 서울을 거치지 않고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원중의 달거리'의 기획과 연출은 모두 김씨가 직접 맡고 있다.

김 씨는 "지역예술인들과 함께 무대를 꾸려가고 있지만 기획과 연출을 혼자서 하다보니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이 부분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연구해 힘닿는 한 끝까지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며 "단순한 이벤트성 공연이 아니라 평화에 대한 진정성이 담긴 공연으로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인식하고, 이에 대한 해결도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공연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김 씨는 "앞으로 달거리 공연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육로를 통해 평양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무등일보)

 
 

[9월 공연·인터뷰] ‘가수 김원중 인터뷰’

‘가수 김원중’
지친 세상과 삶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그리고 기사]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을 취재하러 가서 김원중씨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갑자기 인터뷰를 요청한 철부지 기자에게 공연 전 소중한 시간을 내어 준 김원중씨께 감사를 표합니다. 인터뷰가 길었는데 글을 줄이면 좋겠지만, 내용이 아까워 빼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나실 때 천천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Q: 한 가지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은 동기유발을 해 주는 것이 있다거나, 내가 추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A: 내가 가수인데, 가수는 나이가 들어도 노래를 할 수 있어요. 물론 목소리도 쇠하겠죠. 그렇지만 다른 신체에 비해서 목소리는 덜 변하는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변하면 변하는 데로 그 목소리 가지고 노래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열정이 식느냐 안 식느냐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Q: 그 열정을 식지 않게 하는, 그것이 뭘까요?

A: 무슨 방법이 있느냐고 하면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경계한다는 거죠. 열정이 식는 것에 대한 경계. 늘 긴장하고 이렇게 하면서 잘 안 된 공연을 하고 내려오면 더 열심히 해서 다음 달에는 더 잘해야지 이런 거. 끊임없이 공연이라는 것은 자기 확인이 되는 거잖아요. 순간순간. 매달 자기 확인을 하고 점검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수로서 살면서 스스로 점검하고 살 수 있는 그런 장치가 필요한 거죠. 그것이 자기 정열을 끝까지 유지하는,

Q: 그리고 달거리가 그 역할을 하는 거죠?

A: 그렇죠. 그런 장치를 하고 있는 거죠. 한 달 내내 이 공연을 생각하고 살 수밖에 없어요. 이달에는 뭘 부르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거죠. ?공연이 새로 만들어지면 연주자들하고 연주를 하면서 이건 어떻게 연주를 해 볼까? 늘 음악하고 살게 되는 거잖아요. 재밌죠. 그게 재밌는 거예요.


Q: 그러니까 그게 사실 “아! 재밌다”이게 아니라 힘들고 그 찾아가는 과정이 있지만 그것을 즐기시는 거지요?

A: 물리적으로는 힘들어요. 물리적으로는 목도 아프기도 하고, 목 상태도 안 좋기도 하고 또 연주자들 모아서 약속해서 연습하는 날자 잡기도 쉽지 않고요. 나는 우리 연주자들이 서울에 다 있기 때문에 서울에 가서 연습을 해야 되거든요. 물리적으로는 힘든데 우리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가장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나오면 몸은 피곤하지만 내가 가장 마지막에 나올 때 뿌듯함! 그런 경험 있어요? 있죠? 내가 오늘 하루 열심히 했네, 이런 거.

Q: 그냥 살지 않았구나, 오늘 하루를!

A: 응, 뿌듯한 그런 마음 비슷한 게 피곤함 속에 기분 좋게 들어요. 그런 마음이. 천상 가수인 것 같아요. 노래하는 것이 굉장히 즐겁거든요. 덜 피곤하고. 이게 피곤하면 가수 못 하는 거지. 노래하는 게 피곤하면 가수 못 하는 거잖아요. 노래하는 게 즐거워야지 가수가. 그런 거죠.

Q: 듣다 보니까 제가 계속 궁금해지는데, 딱 2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젊은 시절 노래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주변에서는 노래 잘 한다는 소리 듣고 컸죠. 항상 또 하는 걸 좋아하고. 그 정도였어요. 동네에서, 반에서 노래 잘 하는 정도. 가수가 되려는 생각은 안 했었어요.

Q: 정말요?

A: ‘하하’ 거기까지는. 가수 되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집안 분위기는 가수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었는데, 우연히 우리 지역에 노래 잘 하시고 음악 좋아 하시는 분들하고 어울려지다가 음반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서로 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애향심의 발로인데, 내가 85년도에 데뷔했거든요. 80년도에 초 중반만 해도 지금처럼 음악을 아무데서나 할 수 있고 녹음을 아무데서나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았었어요. 서울에 가야 되요. 연주자도 서울에 다 있고 녹음실도 서울에 다 있고 음반을 만드는 시스템이 전부 서울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방에서는 자체적으로 음악을 만들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 그 당시에 모였던 선배들이나 그런 분들이 꼭 서울 가야지만 음반을 만드냐? 우리끼리 한번 만들어보자. 그렇게 해서 작사, 작곡, LP의 그림까지도 우리가 그렸어요. 그래서 ‘예향의 젊은 선율’ 이런 음반을 만들었어요. 아마 가요사에서 최초로 지방에서 만든 음악 일 거예요. 거기에 바위섬이라는 음악이 들어있었어요. 기념으로 만든 건데, 지역 분권을 최초로 가요계에서 실현한 음악이에요.

음, 기념으로 만들고 나는 대학생이었으니까 학업에 전념하려고 했는데, 이게 알려진 거예요. 갑자기 얼결에 가수가 됐어요. 수년 동안 무명으로 가수가 되기 위해서 고생 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말씀 드리기가 참 죄송한 이야기인데, 운이 좋은 거죠. 가수가 됐어요. 실은 그 뒤가 문제였어요. 가수로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가수가 되기 위한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그 뒤로 되게 힘들었어요. 이 길을 계속 가야되는 것인지. 음악이라는 것이 정말 모든 인생을 걸고서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이런 확신들이 없었잖아요. 저는 나중에 40대 중반이 돼서야 그게 풀어졌어요.

Q: 어떻게요?

A: 뭐, 몇 가지 계기는 있었는데, 어쨌든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전 인생을 다 바치고 다음 생까지 다 바쳐도 쉽게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았고 또 내가 갈수록 데뷔할 때보다 지금 노래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Q: 시간이 갈수록요?

A: 네, 지금 제가 85년 데뷔니까 30년 곧 되어가잖아요. 만약에 그 때하고 지금하고 뭐가 다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때보다 지금 노래를 더 좋아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Q: 두 번째 질문은 한 가지로 말하기 애매할 수도 있는데, 삶의 목적이 궁금해요. 공연 취재하러 왔는데, 듣다보니 그런 점이 궁금해지네요.

A: 나는 가수니까 가수로서의 목적이 한 인간으로서 목적이겠죠. 노래에도 힘이 있어요. 뭔가 변화를 시키는 힘 같은 게. 내가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 받기도 하고, 감동 주기도 하죠. 이 감동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어요.

어떤 노래가 좋은 노래냐고 말하면 딱 개량화 해서 말하기는 어려워요. 그렇지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내 진실을 노래하는 것’ 나는 ‘그게 좋은 노래일 것이다’라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본 것과 내가 느끼는 것들. 이런 것들을 그대로 노래하는 거죠.

예를 들어, 요 근래 ‘광주천’이라는 노래를 하나 만들었는데, 광주천변을 저녁에 산책을 하면서 내가 노래를 불렀는데 조용하다가 갑자기 사람이 노래 부르고 오니까 잉어가 놀래서 팍 튀어 오르는 거예요. ‘잠자던 잉어 한 마리 깜짝 놀라 튀어 오르고’이건 내 경험이에요. 잉어가 “펄퍼덕” 뛰니까 깜짝 놀랐거든요. 내 경험이지.
‘광주천’ 역사가 어쩌고,, 이건 내 관념이거든요. 실제로 내가 느꼈던 것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잉어. 이런 이야기들이..
아마, 그 시간에 광주천을 걸어서 저처럼 깜짝 놀란 순간들이 있었을 거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렇게 같이 느낄 수 있는 공유 할 수 있는 감성들. 예를 들자면 이렇다는 거예요. 그게 진실이라는 거죠. 그런 노래들이 저의 인생관과 맞닥뜨려지고 나의 정열이 합쳐지면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도 할 수도 있고, 혹시 거기서 발견된 어떤 나의 어떤 노래에 대한 철학들이 노래에서 나오겠죠. 뭔지는 모르지만 시선들이라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내가 뭘 보는지. 나는 무등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위로 해줬는데, 정작 그 바람은 저는 지쳐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 마침 하늘을 보니까 잠자리 때들이 막 놀고 있는데, 그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림이잖아요. 거기에서 흐르는 감성들, 바람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들. 그게 내 시선일 수 있는 거지. 어떤 사람은 그냥 ‘바람이 불었어?’이런 사람도 있을 거고, 저 바람을 생각하면 총 바람이 생각난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그건 자기의 시선인건데, 바람이 나를 위로하고 저는 지쳤다. 그건 내가 보는 시선이거든요. 이런 것들이 그 노래 듣는 사람들의 공감을 같이 하게 되요.

이건 자연을 생각하고 살면 그게 보이는 거라고 나는 생각을 하는데

아, 이 가수는 바람, 잉어, 잠자리 때 이런 것을 놓치지 않는구나. 이게 자연이거든요. 늘 우리주위에 있고 있었던 것들인데, 우리는 잊어버리고 살고, 큰 아파트를 생각하고 좋은 자동차가 더 빨리 보이고 이랬을 수 있잖아요. 오픈카를 타고 스카프를 휘날리면서 이런 가사가 더 멋있을 수도 있고, 그게 더 보일 수도 있고, 그런 것 보다는 이런 것 들이 내 주변에 있었구나. 이런 것들이 노래로서 그 사람의 생각이 전달되는 거거든요. 이런 것들이 내가 잠시 잊고 살았던 것들 중요하게 내 곁에 있었던 것들인데, 그런 것들을 한 번쯤 생각하게 하고, 바람 한 번 맞을 때 바람도 고맙고 이제 잉어가 펄떡 뛰어오르면 ‘조심해서 걸어야 되겠네’이런 생각도 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이제 어쩌면 자연을 더 귀하게 여기는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게 관중들에게 생각들이 전달이 되요.

Q: 거기서 다 묻어 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글도 그렇잖아요.

A: 그렇지,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 공감하는 거죠. 이게 예술의 힘인 것 같고, 예술가들은 자기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 같고, 이런 것들이 지친 세상을 위로하고 지친 삶을 위로 할 수 있고 그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런 진실성 있는 노래를 많이 불러보고 싶어요.

듣다보니 달거리가 쭉 유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형식적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반짝 뭐가 있어 보이는지 몰라도 금방 사그라지잖아요. 그런데 진실은 쭉 유지된다는 생각을 요즘에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달거리가 될 수밖에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스텝들이 거의 봉사로 하시는데, 달거리가 유지되는 원동력이 궁금했었거든요. 감사합니다!


<정수연 기자>

 
 

[11월 공연리뷰]오지 않은 첫눈을 보다!

오지 않은 첫눈을 보다!
김원중의 ‘달거리’를 보고




날이 추워졌다. 곧 첫눈이 올 것이다. 오지 않은 첫눈을 미리 봤다. 밖은 찬바람만 서성였지만 무대에서는 ‘사락사락’ 흰 눈이 내렸다. 그 공연을 보고 그렇게 느낀 사람이 나 혼자였을까? 최소한 김원중이 김광균의 시, ‘설야’에 음악을 덧댄 동명의 그 노래를 부를 때, ‘먼데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들었다.

26일, 11월의 마지막 월요일.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렸다. 오후 7시30분, 조명이 꺼졌다. 음악보다 먼저 사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사진속 장면들이 마음에 밟혔다. ‘달거리’의 다른 이름은 ‘빵 만드는 공연’이다. 그 공연을 통해 모아진 수익금은 북한의 ‘대동강어린이빵공장’으로 가서 빵으로 변한다. 노래가 빵으로 변한다. 그 아름다운 변화가 사진의 형태로 북에서 남으로 건너왔다.

‘대동강어린이빵공장’에서 만든 빵의 이름은 ‘옥류’다. 하루 1만 개가 생산되며 평양의 탁아소와 유치원 아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다. 남쪽의 노래가 북쪽 아이들의 주린 배를 채웠으니 노래가 현실정치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정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노래는 저 홀로 빵이 됐다. 그러니까 ‘달거리’ 공연을 통해 불러지거나 연주됐던 노래들의 음악적 은유는 ‘평화’다.

행위예술가 김광철이 무대에 올라왔다. 한 학생을 무대로 부른다. ‘달거리’ 공연을 보기 위해 함평에서 버스 대절해 올라온 학다리중학교 학생이다. 김광철이 사진을 꺼내든다. 낯익은 얼굴들이다. 박정희로부터 시작해 차례로 문재인, 전두환, 박근혜, 이명박, 김대중, 노무현, 안철수의 얼굴이 등장한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은 박정희와 전두환, 김대중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자체로 서늘했고, 망각의 역사처럼 느껴졌다.

김광철은 그 얼굴들을 손으로 짓이겨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는 입에 주어물고 개처럼 짖으며 거꾸로 누워 기었다. 가만히 김광철이 몸으로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정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근데 그것이 과연 정치를 하는 집단들만의 문제일까? 그들을 뽑은 우리들의 선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12월19일이다.

윤진철, 그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춘향가 중 ‘사랑가’를 불렀는데 꺾이고 굽이치고 자르르 흐르는 그의 소리는 이미 세상 밖의 영역에 닿아있는 듯했다. 더 어떤 말이 필요할까. 그가 소리를 마치고 객석으로 들어갈 때 어느 관객이 그랬다. “와, 진짜 잘한다!” 화가 주홍의 모래와 빛을 이용해 손으로 그리는 그림도 여전했다. 그의 손길 한 번에 모래는 의미가 됐다.

김원중이 올라왔다. 공연의 주제에 대해 설명한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여인의 옷 벗는 소리’였다.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김원중이 말했다. “점점 비어가는 계절의 끝자락에 이파리들을 떠나보낸 나무와 헐벗은 대지가 추워 보입니다. 이들을 덮어줄 첫눈을 기다립니다. 칼바람 품고 하늘을 어지럽히며 찾아오는 것이 아닌 먼데 여인의 옷 벗는 소리처럼 내리는 첫눈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설야’를 불렀다. ‘설야’라는 노래의 첫 무대였다. 그 노래는 어느 무대에서도 불려 진 적이 없다.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야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신의 옷 벗는 소리>

노래가 끝났을 때, 모두들 아직 오지 않은 첫눈을 무대에서 봤다!
11월 공연까지 빵 만드는 공연 ‘달거리’는 1199만3310원을 모았다. 그 돈이면 7만1959개의 ‘옥류’를 만들 수 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에게 그 빵, ‘옥류’가 제공됐다. ‘대동강어린이빵공장’의 것과 똑같이 만든 것이다. 그저 밀가루인 그 빵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그 빵, 맛있었다.

정상철 기자(광주드림)

 
 

[12월 공연·인터뷰]"노래로 광주의 상처 보듬고 싶었다"



"노래로 광주의 상처 보듬고 싶었다"
'달거리 공연' 10년
광주의 영원한 가인



가수 김원중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김광균 시·김원중 작곡 '설야'중)
한 달에 한번, 광주에는 한 남자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기타소리와 시원한 노래의 울림은 광주를 닮았다.
바로 노래 ‘바위섬’으로 유명한 가수 김원중 씨다.
마지막주 월요일인 오는 31일 빛고을시민문화에서 가질 올 마지막 달거리 공연준비에 한창이다.
‘다달이 한 번씩 노래로 앓고, 노래로 쏟아내고, 노래로 흐르고 싶다’는 의미가 담긴 ‘김원중의 달거리’는 2003년을 시작으로 다양한 음악적 소통과 문화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한 광주의 브랜드공연이다.
더불어 공연에서 모인 성금으로 북한 어린이에게 빵을 지원하는 등 나눔과 건강한 문화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 그는 음악과 새로운 공연문화를 통해 그 나름대로 소통방식을 찾아 낸 것이다.

지역 최초 음반 발매
유난히 노래를 좋아하고 곧 잘 불렀던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항상 잘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1년 재수를 하고 전남대 농업경제학과에 입학하게 되면서 음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는 “대학에 들어와서 솔직히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대학 음악동아리 ‘로터스’와 대학 합창단에 들어가 노래만 열심히 불렀다. 공부보다 노래가 좋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런데 항상 의문점이 한 가지 있었다. 왜 음반은 서울에서만 나오는 걸까. 광주에서 음반을 낼 수는 없는걸까.
결국 그들은 일을 내고 만다. 광주 몇몇의 음악 선배들과 힘을 모아 음반을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음반제작에는 가수 소리모아, 김정식, 김종률, 신상균 등이 함께 힘을 모았다.
“광주의 색을 담은 음반을 내고 싶었다. 획일화된 서울의 음악이 아니라 우리의 향토색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말이다. 여기서 낳고 자란 사람들이 부르고 만드니 그 색은 절로 났다. 이는 가요사 최초로 지역에서 음악을 만들고 음반을 제작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80년대 지역에서 음반제작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우리 한국 가요사에서 집중 조명할 필요성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런데 그 앨범에 수록된 노래 ‘바위섬’이 대중에게 인기를 끌면서 그는 이름을 날렸다.
“지역에서 음악은 낸다는 것, 아니 지역을 떠나 음반을 낸다는 것 자체가 어떤 기분인지 아실까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다. 게다가 히트곡까지 나왔다. 특히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꿨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고시공부를 하고 있던 그는 사실 한 번도 가수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다. 얼떨결에 가수가 된 셈이다.
유명세를 떨친 후에는 대학교 앞에 있던 사대부고 여학생들이 그를 발견하고 몰려드는 바람에 옷이 찢기는 웃지 못 할 사건도 있었다고.
가수가 된 그는 “단지 노래는 나에게 유희의 수단이고 즐거움을 주는 낙이었다. 그러나 가수는 확실히 다르다. 음악 앞에 겸손해야하며, 부족함을 알고 완성도를 높여가야하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가수의 탄생
철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수가 됐다. 그래서 쉽게 가수로서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았다. 그리고 실력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방황은 시작됐다. 가수를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나서도 갈등은 계속 됐고 약 10 여년의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그렇다고 쉽게 그만 두겠다는 결심도 서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과 나에게 주어진 활동들을 그대로 놔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가수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광주가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광주의 특수성이 나를 필요로 한 것이다. 그 당시 5월 광주, 소외된 광주를 위해 노래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상처를 노래로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광주에서 ‘삶의 진실’을 노래하기로 결심한다. 그 것은 바로 음악 철학으로 연결된다.
그는 “진실된 노래를 부르니 ‘노래가 곧 나이고, 내가 곳 노래이다. 분리된 것이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내가 노래하는 것이 참 대단한 것이구나. 평생을 던져도 모자라겠구나하고 반성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진정한 가수의 삶을 살아보자고 결심하게 된다.

北어린이 빵 지원
한일 월드컵으로 축제의 나날을 보냈던 2002년. 하지만 그 뒤에는 어두운 사건들이 가려져 있었다.
그 당시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일어났고, 미국의 한반도 전쟁을 부추기는 등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서로 적이 아님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기획된 것이 달거리 공연이다”고 말했다.
이어 “달거리 공연은 성금을 모아 북한에 도움을 주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사실 북한은 우리의 형제라는 인식을 관객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마음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고민했던 점은 이벤트성 공연을 지양하고, 한 달에 한번 씩 해서 공연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전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공연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을 관객과 제대로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 해가 끝이 아닌 매년 달거리 공연을 열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공연은 계속 되고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광주의 관객들과 함께 해왔기에 달거리 공연만의 힘이 생겼고 색깔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연은 2003년 처음 시작했고, 2년 가까이 혼자서 했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서 한사람이 한정된 곡을 가지고 공연을 장기적으로 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좋은 공연이기는 하지만 그저 ‘의미가 있는 공연’이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라면 싫었다. 공연이 좋아서 오는 것이 좋다. 만약 의미 있는 공연이기에 찾아온다는 것은 적선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며 “의미 뒤에 숨어 노래한다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모습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새로운 공연계획을 세우게 된다. 바로 각각 다른 분야들의 예술가들과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꾸미는 것이다. 많은 생각 끝에 그림, 재즈, 판소리, 샌드애니메이션을 가미한 풍부한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그리고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초대 손님과의 대화 코너. 이 코너야 말로 삶과 노래에 활력소이다.
그는 “목사, 목수, 시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면 에너지가 충전되고, 영감을 받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올해는 문화예술계 신인들을 소개하고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도 함께 마련돼 공연이 더욱 풍성해졌다.
공연에 대해 말하던 중 꼭 중요하다며 꺼낸 말이 있다. 무대 뒤에서 힘이 되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사실 공연 위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무대 뒤에서 나와 공연을 위해 힘써주는 스텝,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팬클럽 ‘느티나무’, 공연장 앞에서 구두닦이로 성금을 내어주는 후배 등 많은 사람들이 있어 공연이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고마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그는 "달거리 공연이 빵을 만드는 공연을 넘어 시민들의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 가지 꿈
달거리 공연을 하면서 가급적이면 매달 주제 맞은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선보이려 한다.
지난 11월 공연에서 그는 김광균 시인의 ‘설야’라는 시에 곡을 붙여 관객들에게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좋고 황홀하다”며 좋아하는 그는 마치 음악에 푹 빠진 소년 같았다. 아직도 음악에 열정이 뜨거웠다.
마지막으로 가수로서 꿈이 한 가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컨테이너 무대를 장착한 트럭을 가지고 휴전선을 건너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시베리아, 모스크바 그리고 독일 베를린 장벽에 가서 공연을 하는 것이 내 최종 목표이다.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 광주의 5·18 정신을 싣고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과 베를린장벽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 며 “세계를 품에 안을 수 있는, 그런 넓은 가슴을 가진 가수 김원중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임채인 기자(컬쳐인)

 
 

[공연후기]‘빵 만드는 향기 2012’정기간행물12월호 빵본부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 정기간행물|
빵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콘서트




‘지난 9월 달거리는 아무리 추석 전이라지만 객석이 너무 허전하여 우리 마음 또한 허전하였습니다’
10월 달거리 공연의 초대글 아래 추신으로 쓰여진 문구다. 빵공장을 위해, 북녘의 아이들을 위해 오랫동안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 김원중씨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광주로 먼 길을 떠났다.
10월말 내려가는 버스 차창 밖은 누런 들판에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은 단풍나무들로 화려했다. 계절의 변화에 맞게 10월 주제도 ‘산으로 올라간 봄꽃들, 가을 단풍 되어 내려오다’였다. 바쁜 일상을 떠나 이제야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노래는 나에게 몸살 같은 것입니다.
나를 부글부글 끓게 만들고, 나를 눕혔다가 벌떡 일으키고, 나를 뜨겁게 만듭니다.(중략)
그래서 난 오늘의 이 몸살이 꼭 싫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끙끙 앓고 싶습니다.
그래서 올해 나는 ‘달거리’를 시작합니다.
다달이 한 번씩 노래로 앓고, 노래로 쏟아내고, 노래로 흐르고 싶습니다. 벗님들과 함께...
이 달거리가 지금 고통 속에 있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한줌 사랑으로 흐를 수 있다면 큰 보람이겠습니다...”

북녘어린이들을 위한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은 2003년에 시작되었다. 2004년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공연을 이어갔고,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이 시작된 뒤 2010년부터는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2012년 달거리 공연은 매달 마지막 월요일 오후 7시 30분, 광주 빛고을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매월 빵공장사업본부에서 보내주는 메일을 통해 달거리 공연의 소식을 알게 되는데, 김원중씨의 초대의 글을 보면 공연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10월 공연의 첫 무대는 김원중씨의 바위섬으로 시작했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예쁜 그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알고 보니 광주지역의 화가(정용규님)의 작품들이었다. 매달 무대미술을 담당하는 화가를 정하여 화가의 작품도 소개하고, 매번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효과도 있었다. 작년에는 달거리 공연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또한 신인을 소개하는 ‘줄탁’이라는 코너를 두어 지역의 후배음악가가 무대에 설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달거리 공연은 광주의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북녘어린이를 돕고자 하는 취지와,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활성화 하고자 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두 번째 무대는 국악명창의 ‘심청전’, 다음에는 소프라노의 외국곡, 이어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화면에 맞추어 피아노 연주가 이어졌다. 줄탁 코너에서는 ‘맘대로 밴드’라는 두 명의 젊은 신인가수가 나왔고, 모래 그림으로 가을의 감성을 표현하는 샌드 에니메이션 화가의 신기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역시, 김원중의 밴드가 맡았다.
국악과 서양음악이 함께 어우러지고, 영화음악과 샌드에니메이션으로 볼꺼리도 풍부하고, 청년 신인들의 풋풋함과 김원중 밴드의 노련함이 만나는 색다른 공연이었다.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참여하고 매번 다양한 주제와 초청자로 아기자기하면서도 풍성한 공연이 매달 무료로 열리고 있는 광주가 부럽기도 했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김원중 밴드의 마지막 곡은 도종환 시인의 시에 가락을 붙인 ‘담쟁이’였다.
주변의 어려운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김원중씨의 달거리 공연 자체가 담쟁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달거리공연에서 모금된 후원금 12,541,580원이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로 전달되었고, 올 해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공연의 마지막 공지사항을 나누는 시간에 ‘2012년 후원 보내주신 분들 2012년 10월 현재 11,210,310원 모금, 북녘어린이를 위한 영양빵 67,261개 만들 수 있다.’는 문구가 올라왔다.

공연이 끝나고 1층으로 내려가면 김원중 팬클럽 느티나무에서 준비한 다과가 마련되어 있다. 다양한 곳에서 모인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빵과 떡, 과일 등 음식을 나누며 더욱 풍성해지는 밤이었다. 11월 공연에는 북녘어린이들이 먹는 영양빵의 레시피를 가지고 ‘옥류’를 만들어 공연 후에 시식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니, 더욱 뜻 깊은 행사가 될 것 같다.
담쟁이처럼 조용히 큰 벽을 넘으며 통일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달거리 공연, 그 무한한 성장이 기대된다.

김혁민(빵공장인천본부 사무국장)

 
 

[공연칼럼] 아침시평-광주브랜드공연의 자존심

지난 한해동안 문예진흥기금을 지원받은 단체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사업은 무엇일까?

2010년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대한 종합평가결과가 최근 나왔다. 행정평가와 전문가 평가를 합친 최고의 점수는 가수 ‘김원중의 달거리공연’이었다.

김미숙과 임지형 무용단의 공연, 문인협회의 시화전, 얼쑤의 젊은 실험예술제 등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달거리공연’에는 미치지 못했을 정도다.

문학, 시각예술, 공연예술 등 많은 장르의 주류예술을 제치고 이른바 비주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달거리 공연’이 모니터링 결과 최고점수를 받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원중 달거리공연의 성공전략은 무엇보다 지속적인 상설공연에 있다.

매월 셋째주 월요일에는 달거리무대를 볼 수 있다는 지속성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예술성과 창의성도 뺄 수 없는 중요 평가지표다. 새로운 시도가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된다. 판소리와 클래식의 만남, 핑거 페인팅, 영화속 노래 찾기, 토크 프로그램, 그리고 한희원의 무대미술 등등.

여기에 고정관객의 자발적인 열정까지 합쳐졌으니 두 말할 나위 없다. 김원중의 달거리공연은 말 그대로 김원중표 브랜드공연이라 할 수 있다.

광주문화재단은 지난달 3일 출범한 후 광주를 풍성하게 하는 문화나무를 잘 키우겠다는 각오를 수차례 밝힌바 있다. 그 의지의 한가운데에 ‘광주브랜드공연’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에 와야 만이 볼 수 있는 광주다운 공연. 광주의 독자적인 정체성과 이미지가 함축된 생명력 있는 무대. 다시 강조하자면 광주브랜드공연이라는 지역문화콘텐츠를 통해 광주시민의 문화적 자긍심도 높아지리라는 기대도 공연제작을 부추기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문화관광부는 국가차원에서 국가브랜드공연을 육성하고 있다. 2006년부터 ‘국립극장 국가브랜드공연’을 기획하여 무대에 올리고 있는데 올해는 '화선, 김홍도'를 제작 중에 있다고 한다. PMC프로덕션의 '난타', 극단 에이콤의 '뮤지컬 명성황후',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등은 국민의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브랜드 작품이다.

지난달 광주브랜드공연제작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가 개최된 적이 있다.

이 간담회에서 다루어진 주요 의제로 방향성과 장르 결정이 관건이었는데 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5월과 남도소리,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결합하자는 의견과 특히 광주의 역사를 바탕으로 여러 장르를 미학적으로 결합시킨 총체극 형식에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남도의 소리 안에 우리 지역만의 독특한 DNA가 담겨있기 때문에 오디션을 통해 남도소리꾼을 발굴하자는 발상은 특히 흥미로웠다.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행사의 메인공연을 기획사를 통해 비싼 돈을 들여 외지에서 부르는 일에는 다들 열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를 흔히 문화수도라고들 한다. 그처럼 문화수도라 불리 우는 이 땅, 광주에서 예술로 밥 먹고 사는 자의 자존심과 오기, 그리고 뜨거운 열정이 광주브랜드공연을 탄생시키는 동력이다.

그 브랜드 공연 제작에 속도를 내려고 한다.

오는 7월에 열리는 '페스티벌 오! 광주' 공연축제 때 쇼케이스 공연을 하고 수정과 보완작업을 거쳐 11월 공식무대에 올릴 계획을 세웠다.

입춘이 훌쩍 지났다. 김준태시인은 말한다.

래춘(來春)이 아니라 입춘(立春)인 것은 봄이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이다. 힘을 모아 벌떡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고 말한다.

수준 높은 브랜드공연을 완성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투자가 요구되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봄을 일으켜 세우듯이 신묘년 새 봄에 광주문화예술의 총체적 역량을 결집해 광주의 자존심인 ‘광주브랜드공연’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일은 멋진 일이 아닌가. 바로 그러함이 문화수도 광주를 우뚝 서게 하는 한 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박선정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공연·인터뷰] ‘바위섬’닮은 가객 김·원·중

가파른 역사의 길목, 광주 지키며 북한 어린이들 돕기‘달거리 공연’이어가

요즘처럼 대중들이 노래에 대한 관심이 팽창한 적이 없다. TV 의 오디션이나 가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반증한다. 특히 세시봉 열풍을 타고 중년의 감성을 흠뻑 적셔주는 것도 모자라 아이돌 음악에 중독되어 환호하는 젊은 층들도 통기타 문화에 매료되어 맛깔 나는 음악으로 시대와 세대를 넘어 새롭게 조명 되고 있다.

그 열기가 불을 지핀 것과는 다르게 광주만이 가질 수 있는 문화의 가치를 지닌 가수가 있다. 부드러운 음색과 절규로 광주의 아픔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김원중이다. 빛고을시민문화관을 찾았다. 포크음악 5인방의 공연이다.

광주 음악의 큰 축을 이루는 ‘광주포크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자리에 김원중을 빼 놓을 수 없다. 가파른 역사의 길목에서 울림을 주고 메시지를 주는 목소리는 단연 김원중이다. 민족의 애절한 염원이 담겨있는 노래 ‘직녀에게’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우리의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함성이 있다. 문병란 시인의 통일염원을 읊은 서정시가 그토록 강한 메시지가 되었던 것은 가수 김원중의 열창이 아니고서는 사랑 받을 수 없는 음악이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절규 아닌 절규가 긴 여운을 주면서 민중가수로 자리매김 되었다.

TV만 틀면 나오는 아이돌 그룹이나 요즈음 7080 붐을 타고 중년들의 추억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한 세시봉 열풍이 어쩌면 이들의 무대를 꿈틀거리게 하지 않았을까.

김원중은 펄쩍뛰면서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스스로 만든 노래로 직접 음반을 내는 독자적인 활동을 해왔고 역사의 질곡 속에서 그 가파른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음악 속에 녹여 온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광주의 노래는 낭만과 향수를 자아내는 ‘세시봉’이랑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통일을 노래하는 가수` 김원중은 매년 5월이면 5·18 민중항쟁을 추모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80년 당시 광주 항쟁 때 전남대에 다니고 있었죠.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때의 대학생이라면 사회의 변혁을 위해 대다수의 학생들이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고 저도 광주를 떠나 피신을 했습니다. 그때 살아남은 자들은 마음 속 깊이 빚을 지고 있다는 죄책감이 있지요. 늘 저를 괴롭혔어요.”

그래서 김원중은 젊은 날을 시위 현장이나 집회에서 공연하며 지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위안을 주는 노래를 하고자 한다. 노래를 듣거나 따라 부를 때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노래를 부르려 애쓴다.
김원중은 1984년 광주 포크 뮤지션들의 옴니버스음반 ‘예향의 젊은 선율’에 ‘바위섬’으로 데뷔했다. 서정적인 음색으로 바위섬의 고독과 사랑을 노래해서 히트시킨 대학생 스타가수였다. 여기저기 서울 방송국에서 불러주는 곳이 많아지고 레코드사에서 앨범을 내자고 하는 곳이 있었지만 두 번째 앨범이 대중들에게 어필이 되지 않아 실패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음악 정체성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광주로 돌아온 그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무대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며 노래를 했다.

2003년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취지로 김원중이 시작한 ‘달거리 공연’은 ‘빵 만드는 공연’ 이라는 부제를 달고 성금을 모아 북한 어린이 빵공장 사업본부를 지원해왔다. 이 달거리 공연이 가수 김원중과 지역 예술인들이 장르를 뛰어 넘어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김원중은 이 달거리 공연이 “광주를 대표하는 상설공연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남쪽의 힘없는 가수가 노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무색하게 포탄이 오고가며 남북이 경색되었다.

절박한 사람에게 빵은 희망이고 식량이다. 남북의 단절이 김원중에게는 가만히 앉아서 북한 아이들의 궁핍함을 그냥 보게만 할 수 없게 한다.

▲ⓒ 광주광역시

이별이 너무 길다/슬픔이 너무 길다/ 선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연인아, 연인아/이별은 끝나야 한다/슬픔은 끝나야 한다/우리는 만나야 한다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김원중의 달거리는 “다달이 한 번씩 노래로 앓고 노래로 쏟아내고 노래로 흐르고 싶다”는 뜻이 담겼다. 다달이 이어지는 공연의 힘은 느리게 느리게 세상을 변하게 할 것이다.
오늘의 포크음악 공연도 지역의 음악을 자생적으로 생산해 내는 힘이 있어서 벌여놓은 축제가 되었다.

글·사진=김현옥 (프리랜서)

 
 

[4월 공연리뷰] 북녘어린이를 돕기 위한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빵 만드는 공연' 광주에서 열려... 오는 12월까지 릴레이공연


▲ 김원중의 공연 광경 김원중 달거리 공연 마무리 광경.ⓒ 김용한

"남들이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이 일을 미룰 수 없이 공연을 이어가는 이유랍니다."

가수 김원중은 25일 빛고을 시민문화관에서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을 열었다.

이번 공연이 무료로 열리는 공연이었지만 객석을 가득 채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았고 노래, 시, 그림, 성악으로 재능기부를 하는 출연진들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공연은 내내 토크형식으로 이뤄졌고 중간에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을 위한 즉석 생일축하 노래도 이어지는 이색순서도 마련됐다. 성악가 유형민, 나혜숙씨(김현옥 반주)가 불러주는 생일축하 노래에 생일을 당한 객석의 관객도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7080의 세대들에게 '바위섬'으로 더 잘 알려진 가수 김원중은 지역차별을 위해 전국순회를 나섰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광주 지역에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한 달거리콘서트를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것도 남들이 꺼려하는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빵 만드는 공연'을 주변에 지인들과 함께 신바람 나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그는 자신이 연출가가 되고 때론 토크쇼 진행자로 공연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놀랍다.

"모두가 이 일에 동참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기부한다는 것이 놀랍죠. 남들이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이 일을 미룰 수 없이 공연을 이어가는 이유랍니다."


▲ 김원중의 달거리공연 모습. 김원중의 달거리공연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출연진들의 모습.

이날 공연에는 윤진철 국악인과 느티나무 김원중의 진달래꽃, 안개꽃 노래 공연, 깜짝손님 권해효 배우의 등장과 노래, 천상병 시문학상까지 수상한 박남준 시인의 삶과 시, 그리고 노래까지 들려줬다.
공연을 관람했던 김용인(회사원)씨는 "라디오 홍보를 듣고 공연을 지켜봤는데 빵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전하면서 "우리 민족끼리 하는 것인데 정치인들의 사상이나 이념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연을 자주 왔다는 최미형(주부)씨도 "TV에서 보던 권해효씨와 박남준 시인까지 볼 수 있어 기뻤다"고 말하면서 "이런 공연을 통해서 문화생활도 할 수 있지만 우리 동포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모습 북녘어린이돕기를 위한 달거리 공연 모습. ⓒ 김용한

재능기부로 공연에 참석했던 윤진철 국악인은 "처음 공연부터 출연을 했었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자산인 음악을 통해 북녘 어린이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일정으로 광주에 들린 권해효 배우도 깜짝 출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였고 즉석에서 강산에씨에 '라구요'까지 멋들어지게 불러주기까지 했다. 권씨는 최근 준비 중인 일본 지진피해를 입은 일본 내 조선학교 돕기 운동(몽당연필)도 소개해 줬다.

권해효 배우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부터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으로 벌이고 있는 빵 만들기 사업에 홍보대사로 있다"고 강조하면서 "북녘어린이 빵 만들기 사업은 남과 북 이데올로기를 넘어 인도적 차원에서 우리가 공유해야 할 미래의 일이며 남과 북의 어머니들이 마음을 보태는 사업이다"고 강조했다


▲ 권해효씨의 깜짝출연 모습.
강산에씨의 라구요를 열창하고 있는 깜짝 출연진 권해효 배우의 노래 광경. ⓒ 김용한 권해효

이번 공연에 총감독이자 연출자인 김원중 가수는 "분위기가 편안하고 남북교류가 피가 잘 흐르는 교류 상태라면 제가 할 이유가 없는데 저는 단절된 실핏줄을 잇는 마음으로 공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말미에 "꼭 돌아다녀야 좋은 것은 아니고 이곳에서 하더라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며 평화는 좋은 단어인 만큼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일이다. 어렵고 힘들 때 일수록 한걸음 더 가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노력이다."고 전했다.

김원중에 달거리 공연은 2003년 1월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2011년 공연은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5.30, 6.27, 7.25, 8.29, 9.26, 10.31, 11.28, 12.26 오후 7:30) 광주 빛고을 시민문화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용한기자/ 오마이뉴스

 
 

[6월 공연리뷰] 가장 광주적인 것 중의 하나...

<전남>가장 광주적인 것 중의 하나-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문예진흥기금이 지역으로 이관됨에 따라 지자체와 매칭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역협력형지원사업들이 문화협력관들이 심사하고 평가하는 주관리 대상 사업이 됐다. 이들 사업 모두가 원래 사업의 취지와 성격이 뚜렷하나 이중에서 지역에서 실행에 옮기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바로 ‘지역문화예술기획지원사업’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지역협력관들이 가장 고민 하는 것도 바로 이 사업이다. 협력형사업 중 공연장상주단체지원사업과 레지던스프로그램운영지원사업이 정부의 정책사업이라고 한다면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과 지역문화예술기획지원사업은 지자체와 지역재단들의 독자적인 사업으로 볼 수 있다. 육성지원사업이야 소위 말하는 소액다건사업으로 지역내의 정치적 배려 등 지자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주요사업이고 그야말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사업이다.
지역문화예술기획지원사업은 지역의 고유성(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기획력 있는 사업을 발굴 지원하는 사업인데 사업의 역사도 짧고 지원 신청해야 할 예술단체들이 사업이 추구하는 바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아서 사업목적에도 맞추기 힘든 사업이다. 그래서 지역의 단체들로부터 적절한 신청이 들어올 것 같지 않다고 판단되는 지자체에서는 아예 자체 기획 사업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럴 경우 지원예산의 규모만 커졌을 뿐 소액다건 지원사업과 성격이 비슷하게 나눠주는 사업이 돼버린다. 그렇다고 기획 지원 사업을 공모해도 신청사업 중에서 딱히 모델이 될 만한 대표적인 사업이 아직까지 발굴된 것 같지 않다. 이것이 동 사업의 딜레마이다. 아마 몇 년이 흘러야 사업이 정착될 것이다.

그런데 광주문화예술재단은 올해 기획 지원 사업에 대해 자체기획을 지양하고 “가장 광주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공모발굴을 추진하였다. 기획 발굴 지원이 쉽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감지하여 사업 추진에 신중을 기했다. 사업설명회를 사전에 개최하여 예술단체들에게 사업의 목표를 분명하게 전달하였고 당시 설명회장에서 질의 응답시간도 충분히 가져 예술단체들이 모두 동 사업을 이해한 것으로 인지하였다. 그러나 심사 당일 신청한 사업내용을 살펴보니 광주적인 성격의 기획력 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희박하다고 판단되었다. 설명회장에서 그렇게 진지하게 설명을 하였건만 지원신청서의 내용이 사업취지와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텍스트 상으로는 자신들이 무슨 공연을 하는데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으며 자신들의 공연도 아주 기획력이 있는 것이라는 항변이었다.

심사과정에서 인터뷰 시간은 거의 교육시간으로 모드를 바꾸었다. “당신들의 사업계획은 충분히 기획력이 있다. 그러나 본 사업의 취지가 예술단체의 기획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성과 함께하는 기획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설득을 시키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아가기는 하였지만 지역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사업을 발굴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것이라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역성에 가까운 사업을 선정했고, 단체들에게 차기년도부터는 지원신청 전에 광주문화재단의 컨설팅을 받아 지원신청을 하도록 권고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나고 나서 선정된 기획 지원사업 중 ‘빵 만드는 공연 -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을 모니터링하게 되었는데 필자가 협력관으로서 동 사업에 대한 고민을 덜어내기 충분한 공연이었다. 김원중은 한국 대중가요 사에 그 이름보다는 그의 노래 ‘바위섬’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통기타가수다. 그는 1990년 초반에 서울 활동을 접고 귀향하여 광주에서 활동을 해왔다. 그의 이 공연은 빛고을 문화회관에서 저녁 7시 30분에 개최되었는데 공연 전에 이미 공연장을 가득 메운 7백 여명의 광주시민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고 광주시 교육감, 문화재단 이사장과 사무처장, 구청장 등 지역의 인사들이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인사차 들른 것이 아니라 즐기려고 들린 것이란다. 이 공연은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에 개최되는데 재단이사장과 사무처장은 매회 참석한다고 한다.



공연전 무대 스크린에는 화가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변주형태로 그린 그림이 와이드비젼으로 장식되고 있고 호스트인 김원중이 등장하여 6월의 공연테마가 ‘보듬어주기’라고 하면서 오프닝멘트를 끝내고 들어간다. 광주답게 지역의 판소리 명창 윤진철이 나와서 ‘수궁가’를 부르고 남성오중창이 영화 속 OST ‘라이온킹’을 부른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변주된 회화그림이 한 컷씩 선보이면서 흥미를 더해 간다. 그리고 그달에 생일을 맞이한 사람을 위한 ‘해피버스데이’가 남성합창단에 의해 진행되고 주홍화가의 샌드애니메이션, 유명시인 도종환과 작가와의 대화, 그리고 시와 음악과의 매칭프로그램이 전개된다. 마지막에는 주인공 가수 김원중이 나와 통기타와 함께하는 라이브 쇼로 뜨거운 관람 열기로 가득한 대중과 함께 혼연을 이루어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그야말로 광주시민과 함께하는 격조높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합동공연이 이루어진 것이다. 무대 앞에는 김원중 광주 팬 그룹이 진을 치고 감동의 응원과 함께 심지어는 일어나서 몸을 흔들어 대고 그것이 전혀 과도하게 비추어지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다. 모두 김원중의 예술카리스마에 의해서 일어나는 흥과 멋과 기의 술렁임과 파동이다. 열기의 일어남과 소멸 그리고 다시 올라옴 속에서 광주적인 것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비로소 느꼈다. 맨 앞줄 관람석에서의 부끄러움 없는 벅찬 호응소리와 동심(同心)의 술렁임은 뒤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동화되어 신분과 연령을 가리지 않고 자타 구분없이 하나가 되는 감동의 폭발을 이루었다.

진정으로 신청서상에서는 전혀 감지할 수 없었던 지역의 고유성을 공연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광주적인 기획력은 바로 텍스트의 행간 속에 살아 숨어있었고 모니터링을 통해 그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다음 달 공연이 기대된다. 무대스크린은 어떤 작품이 비추어질 것인가? 다음 영화음악은 무엇을 선곡하고 어떤 예술가들이 그것을 실연시킬 것인가? 작가와의 대화에서 작가는 누가 나올까? 등등



사실 이공연의 우수성은 시민들의 문화적인 감수성을 섬세히 살피고 거기에 예술은 어려운 것이라는 부담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가 그들에게서 문화적인 감동을 뽑아내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 대중음악이 중심을 이루고 다양한 순수예술이 통합적으로 접목한다. 대중예술로 마음의 빗장을 풀게 하고 이어서 순수예술을 관람하게 하는 고도의 숨겨진 전략을 구사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적 구현이다. 예술기획자들이 대중의 문화향수권을 높이기 위한 궁극적인 목표지점을 이미 점하고 있었다. 대중음악은 물론 재즈, 국악, 클래식, 영화음악 등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의 어우러짐과 함께 샌드애니메이션, 회화, 문학 등 멀티미디어들의 특색 있는 결합을 통해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실현한다.

또한 매달 한 번씩 한다는 의미의 달거리 공연은 일정한 포맷을 구축하여 일관성을 유지하고, 정해진 시간에 동일 장소에서 상설적으로 막이 올라간다는 사실이 행사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점도 높이 살만하다. 이번이 네번째 공연인데도 만석인데 점차 예약을 해야 공연관람이 가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공연 입장료를 받지 않고 성금 모금을 한다. 물론 매달 모인 성금은 북녘 어린이를 위한 영양빵 만들기에 모두 사용되며, 공연을 통한 사회공헌과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것도 부대적인 사항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지역협력형지원사업이 목표로 하는 가장 “지역적인 것”을 잘 드러내는 바람직한 우수모델이라고 확신한다.

유재봉(예술위원회 호남지역 문화협력관)

 
 

[공연·인터뷰] 예술가들의 말 말 말 '김원중'

'노래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열정이
나의 생을 지배하기를...'


...어떤 소리든지 낼 수 있고 그 소리로 노래할 수 있다면 ‘나는 가수다.’라고 말이지요.
생각해보면 가수의 길을 가라고 등 떠미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순전히 저의 선택이었지요.
인생에서 기적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

작년 한해 꼬박 1년간 무등산에서 살았습니다.
‘바위섬’이라는 노래를 불러 준비 없이 가수가 되었고 그 후로 30년 가까이 가수로 살아오면서 타고난 것만 갖고 잘 써먹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 번쯤은 목숨 걸고 노래 공부를 해보자고 결심하고서 산으로 간 것입니다.
공연과 관계된 일을 빼고는 거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열심히 노래 공부를 하려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밤과 낮 구별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한 결과는 참담하였습니다. 성대 결절이 온 것 같았고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폭포와 싸우던 옛 명창들 흉내를 내면서 더욱 힘을 내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점점 더 나빠질 뿐이었습니다. 훗날 윤진철 명창을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하였더니 저보고 참 미련하다고 하면서 명창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황을 두고 ‘X 되어 버렸다.’고 한다며 측은하게 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제가 절망적인 상황이 되거나 실의에 빠질만한데도 전혀 ‘근거 없는 낙관’이 저를 실망하지 않게 하니 말이지요. 오히려 거친 목소리로
중얼중얼 거리는 음을 몇 개 쓰지 않는 ‘달이 예쁘다’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더니 사람들이 좋다. 라고도 합니다. 이런 상황들을 지나면서 저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떤 소리든지 낼 수 있고 그 소리로 노래할 수 있다면 ‘나는 가수다’라고 말이지요.
생각해보면 가수의 길을 가라고 등 떠미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순전히 저의 선택이었지요. 인생에서 기적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나의 선택들이 모여서 나의 모양이 정해질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가수로서의 나의 모습은 제가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하는 선택 중에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없기를 바랍니다. 아니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리가 나오는 한 나는 가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가수가 될지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수로 그냥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래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열정이 저의 생을 지배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동문화11·12월호

 
 

빵이 열리는 공연

김영숙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 광주컨텐츠산업지원센터(옛 KBS 광주지국)에서 빵 만드는 공연(빵의 재료구입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는 공연)인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열렸다. 2010년 초부터 이어진 이 공연은 매달 여러방면의 초대 손님이 나와 다양한 이야기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2010년 10월의 주제는 ‘네가 있어 행복하다’였다. 달거리 공연의 주인장인 김원중 씨가 무대에 올라 “우리 모두 이 가을에 ‘해피 바이러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달거리 공연은 여러 장르의 예술이 집체적으로 어우러지는 게 특징이다. 각 코너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광주를 넘어 전국을 뛰어다니는 바쁜 예술가들이다. 그들이 매달 한 번씩 출연료도 없는 공연에, 북녘 어린이를 위해 빵을 만드는 일에 함께 하고자 기꺼이 한 자리에 모인다.
첫 출연자는 ‘악동(樂童)들’이다. 그룹 이름과 계절에 걸맞게 흘러간 유행가를 신나게 부른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의 가사가 노래와 함께 영상으로 흐르니 참가자들의 소리가 거대한 합창이 된다. 화가 주홍의 샌드 애니메이션은 한 쌍의 나비가 춤을 추고, 남녀가 만나 사랑하는 장면을 모래 위에 곱게 수놓는다.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모래가 춤이 되고 노래가 된다. ‘명창 윤진철의 소리마실’ 코너에서는 윤진철 선생의 제자 중 한 명이 결성한 국악 아카펠라 그룹 ‘토리스’가 출연했다. 민요와 서양음악, 대중음악이 결합된 이들의 ‘사랑가’, ‘뱃노래’ 등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달거리 공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가 ‘영화로 보는 음악’이다. 오늘의 영화는 우리나라에 1990년에 개봉된 <사랑과 영혼>이다. 이 영화의 유명한 삽입곡(OST)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가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첼로의 선율을 타고 흐른다. 관객들의 연령이 평균 50대인데 20년 전으로 돌아가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바치고 있는 모습이 겹쳐진다. 이날의 초대 손님은 도편수 박영산씨다. 도편수란 집을 지을 때 책임을 지고 일을 지휘하는 우두머리 목수를 일컫는다.
“몇 해 전에 박영산 님을 만나 악수를 하는데 순간 저는 감전되는 줄 알았습니다. 크고 투박한 손을 마주잡는 순간 ‘아, 나도 이렇게 진지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이 분은 열네 살부터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통나무를 들다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밀리고 찢겨 손에 변형이 생겼습니다. 손마디가 하나 없어지고 손에 물갈퀴가 생겼습니다. 이 양반에게 반해서 제가 6개월간 따라다녔고 드라마처럼 살아온 이 분의 삶을 노래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집 앨범에 수록된 ‘아티스트(Artist)'를 격정적으로 부른 김원중 씨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 달거리 공연은 빵을 만드는 공연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정성으로 빵나무에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5천 원이면 빵 30개를 북녘의 어린이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무대 앞 화면을 가득 채운 빵나무에는 정성을 모은 사람들의 이름이 피어난다. 빵나무에는 빵이 열리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해피 바이러스가 피어나는 10월의 공연, ‘네가 있어 행복하다.’ 였다.



김원중 씨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무료로 공연을 해준 고마운 이들과 빵본부 간부들한테 멋지게 한번 쏴야겠다는 생각으로 인근 화순에 위치한 염소 목장으로 안내했다. 그 시각이 밤 11시였다. 화가이자 무대예술가 한희원, 작곡가 김현옥, 핑거페인팅화가 주홍, 그리고 김원중의 팬클럽 ‘느티나무’ 회원들과 빵본부 이미혜 본부장, 송춘희 광주사업단 집행위원장, 김원중 씨의 친구와 지인들이 모여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풀어 놓았다.
20대 초반의 팬클럽 회원인 어린 학생이 인사를 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저는 전남대 정치학과의 오유인이라고 합니다. 이 공연을 보고 나면 다음 공연 때까지 그 여운이 온몸에 남아있습니다. 장래 희망은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때 꿈은 대통령이었지. 그런데 2학년 때 갑자기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홍보하는 대사가 멋있게 보이는 거야. 그래서 2학년 때 꿈을 대사로 바꿨지.”
김원중 씨의 말에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비슷한 소리를 해댄다.
“꿈을 이뤘네요. 빵본부 홍보대사니까 말이에요. 하하하.”
“난, 이미혜 본부장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나보다 어리고 덩치도 작은 사람이 평양에 빵공장을 세웠어요. 이거 대단하지 않아? 암튼 고생 많이 하는데 오늘 많이 드셔요. 흑염소가 여자한테는 무척 좋다잖아요. 앞으로 큰일 하려면 몸을 잘 챙겨야 돼.”
“모두 여러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이런 게 통일인 거 같아요. 따뜻한 마음을 모으고 서로가 챙기는 일 말입니다. 제가 작년에 빵공장 홍보하러 일본 삿포로에 간 일이 있어요. 대부분 일본인들이었는데 한 기자가 아주 무례한 질문을 했어요. ‘통일이란 체제를 흡수하는 거다. 빵공장이 하는 게 뭐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더군요. 완전히 무시당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땐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그 사람의 말은 통일운동이라는 것은 강자가 약자를 흡수하는 것이고, 이북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도 필요 없다는 거죠.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 보셨죠? 전쟁 중에 두 아들의 사상이 갈렸어요. 부모는 누구를 지지해야죠? 우리가 그런 상황이잖아요 통일이라는 게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우월해서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내 자식들을 안타까워하면서 이 상황을 이겨내는 거요. 저는 그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일본에 잠깐 있는데도 너무 속상했는데 그런 일본인들 속에서 매일 살아야 하는 재일동포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까 더 속상하더라고요.”
“지금 우리는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어. 왜 우리는, 같은 민족인데 반세기가 넘게 헤어져서 아직도 못 만나고 있느냐 말야. 이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어?”
이미혜 본부장과 김원중 씨의 말에 깔깔대던 분위기가 장맛비에 씻긴 듯 모두 진지하다. “그런데 그걸 이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여기 모인 사람들은 진짜 괜찮은 사람들이에요. 통일에 대한 색깔은 다르지만 ‘통일’이라는 이 시대의 가장 어려운 화두를 가지고 모여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 나는 정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입으로 얘기하는 것이 조금 쑥스럽지만 북쪽에서도 우리 빵공장 활동을 많이 존중해요. 왜냐면 대기업도 그렇고 여러 단체에서 대북 지원사업을 하는데 일시적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우리 빵공장은 6년간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지금은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교류사업이 조금 어렵지만 상황이 풀리면 빵공장을 위해 애쓰시는 여러분들을 꼭 평양의 대동강어린이 빵공장에 모시고 가겠습니다.”
“와! 진짜요? 본부장님? 우리 괜찮은 사람들끼리 한잔해요.”
“내가 내 이름 걸고 하는 달거리 공연에 출연료를 하나도 못 주고 있는데 공연에 함께하는 사람들한테 꼭 하는 얘기가 그거예요. ‘평양에 같이가자. 그게 출연료다.’라고요. 달거리 공연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내가 공연을 하면 실은 일 년 내내 모은 돈의 열 배를 한방에 모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사람들한테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 이거지. 작지만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거든. 이 일은 이벤트로 접근해서는 될 일이 아니야. 진정성으로 해야 돼.”
“이 공연에서 제일 큰 느낌은 유쾌하다는 것이에요. 동네 축제 같은 느낌이요. 공연에 참가하시는 예술가도 그렇고 관객들도 그렇고 모두 흠뻑 즐기시는 것 같아요.”
“공연을 보러 오기 전에 전주에 들러 이 공연 얘기를 했어요. 공연을 보고 있다가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여기는 중년의 남성과 여성들이 소년과 소녀가 돼서 만나는 곳이다.’라고 말이에요.”
“오늘 술이 잘 안 팔리네.”
“이렇게 진지한 얘기를 하는데 어떻게 술 퍼먹고 있겠어요?”
작곡가 김현옥다운 발언이다. 술을 한 잔도 못하지만 사람들에 취한 듯 얼굴이 불콰하고 혀도 좀 풀린 듯한 말투다. 그게 매력이라고 자타가 공인한다.
“김현옥도 고생이야. 매달 한 곡씩 써야 되잖아. 이거 모아서 음반 하나 만들어야 되는데.”
“아녜요. 그 돈 있으면 이북을 돕죠.”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김원중 씨는 2003년부터 꼬박 24개월 동안 ‘북녘 어린이를 위한 사랑 모으기’ 달거리 공연을 했다. 그는 한 달에 한번 무료 공연을 하면서 ‘북녘 어린이들에게 한 줌 사랑으로 흐를 수 있다면 보람이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사실 스물네 번의 공연은 그에게 너무 벅찼고 2년간의 공연을 마치고 한참을 앓았다.
그러나 다시 2010년 3월, 달거리 공연을 시작했다. 이유는 하나다. 남북관계의 악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빵공장에 힘을 보내기 위해서다. 이 공연에 사람들은 ‘빵 만드는 공연’ 또는 ‘빵이 열리는 공연’이라고 예쁘게 이름 붙였다.
김원중 씨는 2010년 5·18광주항쟁 30주년을 맞아 기획 앨범을 냈다. 공부보다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80년 5월 광주의 금남로에 있었지만 결국 두렵고 참혹한 그 현장에서 도망쳤다. 그렇게 살아남은 그는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다. 십수 년 전에 망월동에서 49일간 매일 노래를 한 적이 있는데 영령들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 음반을 녹음할 때는 너무 아파서 울기도 했다.
남들처럼 조금만 비껴가는 처신을 배웠더라면, 잠시만이라도 정의를 외면할 줄 아는 심장을 가졌더라면 그는 몸이 좀 편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노래로 말이다.
“나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나의 모순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세월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면서 꾀죄죄했던 내가 제법 말끔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부끄럽고 초라하게만 여겼던, 내가 가진 어떤 것이 소중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노래입니다. 두렵고 부끄럽지만 이제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말이지요.”
이렇게 그는 오늘도 노래를 부른다.



김영숙 - ‘빵이 열리는 공연’(그래 빵이 종겠어-도서출판 이즘2011.12.

 
 

[3월공연리뷰] 산란하는 ‘달빛’을 보다

산란하는 ‘달빛’을 보다
다시 열린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 5년 만에 다시 열린 `달거리’, 김원중의 노래는 객석에 닿고 세상에 닿고 북녘에 닿았다.

바다가 부푸는 것이나 여자가 제 안으로 빛을 받아들이는 일이나 같은 이치다. 모두 달의 힘이다. 달의 주기와 여자의 주기는 같다. 달이 주관하는 한 달의 시간은 모든 생명들의 거처다. 그 밤, 열렸던 그 공연에서 산란하는 달빛을 봤다. 한 달에 한 번 차고 기우는 달처럼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무대. 공연의 이름인 ‘달거리’는 생명의 순환을 지시하는 음악적 기호처럼 느껴졌다.

 15일 광주콘텐츠산업지원센터 영상관에서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있었다. 5년 만의 부활, 명성은 여전했다. 노래로 앓고, 노래를 쏟아내고, 노래로 흘렀다. 그러나 또 달랐다. 작은 소극장에서 진행된 무대는 소통의 지평을 넓혔다. 김원중 혼자 무대를 누비는 개인의 공연이 아니었다. 대중음악과 국악이 만나고, 클래식이 함께 손을 잡았다. 음악과 영화가 내통하고, 노래와 미술이 한 얼굴로 무대에 섰다.

 무대의 세트 구성부터 달라진 ‘달거리’를 보여줬다. 조명을 제외하면 무대연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여백처럼 휑하니 비어있으면서 또 가득 차 있는 무대, 그 힘은 화가 한희원의 그림에서 나왔다. 돕고 싶은 마음이 앞섰고, 재주가 그림에 닿아있는 까닭에 한희원은 간결한 붓끝으로 달거리 공연을 표현하는 그림들을 그렸다. 순간순간 바뀌는 영상의 형태로 그의 그림이 무대를 채울 때, 무대 위를 달빛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한희원의 그림이 미리 제작된 것이라면 화가 주홍의 그림은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공연을 보며 느낀 떨림을 핑거페인팅으로 곧바로 구현했다. 음악이 그의 손끝에서 순식간에 이미지로 몸을 바꿨다.

 윤진철의 소리마실은 국악의 흥이 어떻게 사람의 팔과 다리를 들썩이게 하는지 증명했다. 윤진철의 입에서 밝고 경쾌한 소리 한 자락이 터져 나올 때마다 객석이 몸을 들썩였다. 마지막 ‘진도아리랑’에서는, 뭐랄까, 저 유명한 ‘서편제’의 청산도 돌담길 롱테이크처럼 관객과 함께 소리로 울고 웃었다. 작곡가 김현옥 씨가 재해석한 ‘해피버스데이’의 변주는 깊은 첼로 선율로 무대를 적셨다.

김원중이 무대에 섰다. 그가 가면을 쓰고, 수줍게 춤을 추고, 낮은 목소리로 관객과 대화할 때 무대와 객석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여전했다. 그가 ‘술 한 잔’을 부를 때 아무도 인생이 내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음을 탓할 수 없었다. 제 것의 이익이 아닌 북쪽 아이들의 빵 한 조각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한 사내가 무대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공연의 이름이 ‘달거리’이고, 노래가 달빛을 닮아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 번의 암전 그리고 총소리. 무대 위에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진다. ‘공동경비구역 JSA’다. 모두가 봤고, 익히 기억하는 장면이다. 남과 북의 병사가 놀다가 순찰 도는 북한의 간부에게 발간되는 장면. 요란한 총성 사이로 영화음악이 흘러나온다.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다. 김원중이 그 노래를 다시 부를 때 남과 북의 심리적 거리는 멀지 않았다.

 김원중은 말했다. “다들 아는 저 영화에서 남과 북의 군인들은 단지 함께 놀았기 때문에 죽어야 했다. 놀았다는 것이 죽음의 이유가 되는 설명 불가한 일이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달거리 공연을 통해 평양에 만들어졌던 ‘북한영양빵공장’은 하루 1만 개의 빵을 생산한다. 북한의 빵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지만 남북관계의 악화와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래에 담긴 작은 마음들이 암울한 남북의 현실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이라고 나는 믿는다.”

다시 시작된 공연은 떨어져 있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끝이 아니다.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을 모아 달거리 공연은 계속된다. 매달 셋째 주 월요일, 다음 공연은 4월19일이다.

[광주드림] (2010.3.17)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3월공연리뷰] '직녀에게 김원중'이 달거리를 다시 하는 까닭

'직녀에게 김원중'이 달거리를 다시 하는 까닭





<바위섬> <직녀에게> 등으로 유명한 가수 김원중이 지난 3월 15일부터 다시 '달거리'를 시작했다. 매달 셋째주 월요일 저녁 7시가 그의 달거리 주기다. 달거리라, 여자들이 한 달에 한번 한다는 그 신비롭고 영험한 생명잉태의 의례? 그런데 남자인 그가 달거리라니! 게다가 그의 달거리는 생명의 피 대신 '생명의 빵'을 만든다.

그러니까 지난 2003년과 2004년, "노래로 앓고, 노래로 신음하겠다"며 한달에 한번씩 피를 걸러내듯 가수 김원중은 공연을 했다. 줄곧 현장에서 노래를 해왔던 그에게 달거리 공연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무가 잎을 틔우고, 채우고, 스스로 떨어뜨리며 제 살과 영혼의 살을 찌워가듯 한달에 한번 노래의 정령을 모시며 자신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드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 이어간 공연으로 얻은 수익금 2천만원을 그는 '북한 어린이 영양빵 공장' 만드는 일에 전액 기부했다. 그리고 그는 몇해를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으로, 도법 스님과 생명의 강을 살리는 곳으로, 매향리 주민들의 눈물이 있는 곳으로,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와 함께 하는 곳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간만에 새 앨범도 냈다.

그리고 몇년만에 다시 달거리 무대로 돌아온 그는 아예 공연 제목부터 '빵 만드는 공연'으로 잡았다. 그가 달거리 공연 수익금을 기부해 함께 만든 '북한 영양빵 공장'에선 하루 1만개의 빵이 생산된다. 1만개의 빵은 북한 어린이의 일용할 양식이 되고 있다. 빵 만드는 원자재인 밀가루 등의 가격상승과 새 정권들어서 얼음보다 더 심하게 굳어버린 남북관계는 '영양빵 공장'의 가동을 힘들게 하고 있다. 다시 시작한 달거리공연을 통해 북한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빵 한 쪼각이라도 멈추지 먹이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특히 올해 달거리 공연엔 판소리 명창 윤진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김현옥, 화가 주홍, 화가 한희원 씨 등이 함께 무대를 꾸민다. 3월 공연엔 '섬진강 시인' 김용택도 자리를 함께 했다. 따뜻한 빵 한 조각을 만들기 위해 장르를 넘어서 한 자리에 서는 그들이 아름답다. 평양에서 생산되는 영양빵이 더욱 따뜻한 것은 이들의 진정성 때문이다.

달거리 공연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매월 셋째주 월요일 저녁 7시, 광주컨텐츠산업지원센터 영상관(옛 KBS)에서 열린다. 입장료는, 무료다. 하지만 절대로 빈 손, 빈 마음으로 와선 안된다. 북한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빵 한 조각 먹이고 싶다면 와서 약간의 성금을 내도 좋고, 그날 주머니가 비었다면 다음 공연에 다른 이들과 함께 오면 된다.

2010 달거리 공연의 첫회를 함께 했던 나와 몇몇 사람들은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로 했다. 우선 다음에 김원중의 달거리를 후원하는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 이름은 '달거리 식구들(http://cafe.daum.net/ohmysu) 한 달에 한번 공연도 함께 가고, 수다도 떨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소박한 생각에서 만든 카페다. 물론 아무나 가입할 수 있다.

변덕스런 봄 날씨가 계속 되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따순 밥 한 그릇 나누지 못했던 무심함을 김원중의 달거리에서 아름답게 질책받았다. 누구는 사는 날은 한날인데 누구는 헤아리고 살고, 누구는 무시하고 산다. 그 대상이 나라면....? 숨이 턱 막힌다. 남을 헤아린다는 건 결국 내가 헤아림을 받는 것일 뿐.

참, 김원중의 2010 달거리 두번째 공연은 다음달(4월) 19일 월요일 7시에 열린다.

* 사진은 거리가 멀게 잡힌 사진은 달거리 공연 당시 모습이다. 맨 아래 있는 사진은 다음달 달거리 공연을 준비 회의를 하고 있는 김원중의 모습이다.


이주빈<출처>http://blog.ohmynews.com/clubnip/ 오마이뉴스

 
 

[4월공연리뷰]행복한 하루, 행복한 사람 김원중을 생각하며

행복한 하루, 행복한 사람 김원중을 생각하며...

봄비라고 하기에는 피부에 닿는 빗줄기가 꽤 세차게 느껴진다.
바쁜 걸음으로 "빵만드는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장으로 쫓아 들어간다.
여느때처럼 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공연장 작은 로비에 멋스러운 테이블보와 화사한 꽃으로 꾸민 탁자위에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빵과 쿠키를 내어놓고 공연후 출출해질 출연진과 관객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공연장에는 삼삼오오 친구, 연인, 가족단위로 사람들이 밀려들어오고 나이는 초등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고르게 입장을 한다.

달거리 공연의 백미는 다양한 장르의 출연진들의 만들어내는 작은 소란들이며...그 소란들은 북녘의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한달을 준비하고 일년을 채워나간다.

악동들팀은 김원중님의 전남대합창단 후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직 가수와 의사까지 직업도 다양하지만 그들의 음색은 정말 개구진 악동들의 발랄함으로 가득차있고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한다.

설치 미술가 주홍선생님의 모래그림이 중간 중간 공연안내도 하고 주제도 알려주고 음악과 함께 한편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가 새로운 장르를 보는 신기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영화 서편제 영화 중 청산도 돌담길을 넘어가며 '진도아리랑'을 뽑아내는 대목이 스크린을 가득채운다. 저 멀리서 어른거리며 주거니 받거니 두 배우가 노래를 하고 우리 시야에 그들의 얼굴이 선명히 보일때쯤 명창 윤진철님이 걸어나와 그들의 부르던 '진도아리랑'을 이어 구성지게 불러댄다. 전라도 말로 그야말로 맛깔나게 불러제낀다.

달거리 4월의 주제가 '맑은 시냇물에 봄비 설레듯'인데 사랑이 주제다. 윤진철 명창은 이 주제로 춘향가의 사랑가로 사람들을 박장대소 까르르 쓰러지게 만들고 흥을 잔뜩 올리고 가는데...대단한 에너지이고 참말로 전라도라 내가 그저 얻어가는 행복한 시간들이다.

다시...작곡가 김현옥님과 함께하는 클래식은 한마디로 "굿~"이다. 매회 'Happy Birthday'를 편곡해서 들려주는데 이번엔 개구쟁이 스타일의 하이든식, 심오한 모짜르트식으로 편곡되어 귀가 즐겁고 마음이 들뜨는 생일축하곡을 선사 받았다. 이 공연에는 그달에 생일을 맞은 이들에게 축하곡으로 들여주는데 온전히 나를 위한것 처럼 즐거운건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언제 이런 기회가 있으랴...
이번에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실내연주곡으로 피아졸라의 '리베트 탱고', 다시 앙콜곡으로 피아졸라의 '만월'까지 듣게 되었다.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정말 행복한 박수갈채를 보내게 하는 연주였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원중
대학시절 '직녀에게'와 '바위섬'의 가수로만 알았는데 그의 노래를 최근에 다시 들으면서 마음이 자주 아려온다.

50이 넘은 그는 아직도 설레임을 이야기한다.
봄비오는 소리에 기타 튕기며 그 느낌을 읽어가는 그의 감성지수는 항상 상향곡선이고
눈물을 머금은 그는
혼자이면서도
쏟아지는 빗줄기가 한줄기 한줄기 모여 쏟아지듯
사람들 가슴속에 무수히 쏟아지며
무한히 함께하는 삶을 산다.

북녘 어린이 영양빵 만드는 일에
지난 2년간의 노동의 댓가를 웃으며 행복하게 쏟아붓으며
그는 마냥 좋아라~ 즐거워라한다.
그리고 더, 더, 좀더 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그리고 또 한달하고 일년을 자신의 열정을 태워낸다.

빗줄기들의 무수한 파장처럼
감성의 파동으로 우리 심장을 다듬질하고
내 눈가의 근육을 뜀박질뛰게 하며
행복한 공연에 결국 눈물 찔끔거리게 하는 힘이 있는
가수 김원중을
나는 너무 아끼고 아낀다.
좋아하고 그 열정에 감동하고
오늘 행복하다.
어제 들은 김원중님의 신곡 "춤춘다"가 귓가를 울리며 이 어두워만 가는 시절에
춤출수 있게하는 무언가가 우리에게 자꾸 생겨나기를 빌어본다.
김제동의 사과박스도 좋고...
무한도전의 지지글도 좋고
전교조 선생님들의 단결도 좋다.

지금 우리를 다시 춤출수 할수 있는 것이라면... 다 좋다.

ID물드는바람<출처>http://blog.ohmynews.com/peoplepower/주권닷컴

 
 

[5월공연리뷰] 달빛, 혁명 그리고 울음들

달빛, 혁명 그리고 울음들
김원중의 세 번째 ‘달거리’ 공연

비가 왔다. 와서는 며칠을 그치지 않고 내릴 것 같은 비였다. 가끔 비는 역사 아래로 내릴 줄 안다. 그 밤 도청에서 달빛으로 스러졌던 사람들을 닮은 노래를 만나러 간다. 분수대 앞에서는 80년 오월 30주년을 기억하는 전야제가 열렸고, 시간과 사람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아직 노래는 혁명을 기억하는가? 정말로 ‘혁명이란 강이나 풀, 봄눈 내리는 들판 같은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노래는 여전히 안으로 삼키는 ‘울음’이다.



같은 시간 어떤 곳(오후 7시30분, 광주콘텐츠산업지원센터 영상관)에서는 어둠 너머로 달빛이 가득 찼다. 망월(望月)이었다.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 공교롭게도 30년이 흘러버린 오월의 세 번째 월요일은 17일이었다. 30년 동안 늘 가장 많은 광주 사람이 옛 도청과 분수대 앞에 모이는 ‘그날’이었다.

무대는 여전히 비어있었지만 가득 찼다. 이번 달거리를 화가 한희원은 ‘찔레꽃’으로 표현했다. 슬픈 하얀 빛들, 꽃잎들은 아득하게 피어 점점이 날아와 객석에 박혔다. 하얀 꽃잎은 80년 오월의 어느 날 거리에 뿌려졌던 핏방울들을 닮아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환한 꽃잎들이 많이 슬퍼 보였다.

꽃들의 은유는 화가 주홍의 핑거페인팅에서도 계속됐다. 그의 꽃은 ‘말 건넴’이었다. 단단하게 끈이 조여진 군화 속에 한 송이 꽃을 피웠다. 그리고 적었다. ‘꽃을 심으리 그대 가슴에’, 모래 위에 새겨진 문장 위에서 80년 오월이 울었다. 몇몇의 관객이 함께 울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편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살아남았으므로, 아직 살아있으므로 먼저 떠난 그들은 늘 부채다.

내면에 가득했던 한의 울음들은 심청가 한 대목으로 이어졌고, 작곡가 김현옥의 ‘해피버스데이’의 변주는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장치가 됐다. 무대로 쪽지 한 장이 건네졌고, 객석의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건넸다. 바이올린 선율은 위로였다. 오월도 이제 그런 사랑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음악과 영화가 만나는 시간, ‘쉰들러리스트’의 한 장면이었는데 음악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영상이 지시하고 있던 어떤 시 한 편을 옮겨 적어야겠다. 독일 바이마르 외곽에 ‘부헨발트’가 있다. 독일에서 가장 큰 수용소다. 그곳은 유대인들의 무덤이었다. 진료실은 포로들을 검진하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키와 몸무게를 달기 위한 것처럼 위장해 알몸으로 들어오는 포로들을 총살했고, 바로 옆방 소각장으로 보냈다. ‘쉰들러리스트’는 그 장면들을 담고 있었다.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유대인이었던 시인 파울 첼란은 부헨발트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미 가벼워져버린 목숨처럼 썼다. <아침의 검은 우유 우리는 그것을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점심에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마신다> (‘죽음의 푸가’ 중)
그의 기억은 죽은 자들의 곁에서 멈췄다. 그의 가족은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유대인, 집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독일어였다. 그에게 독일어는 모국어였고, 살인자의 언어였다. 그는 독일어로 부모의 죽음, 동족의 박해 역사, 인간의 만행을 표현했다. ‘죽음의 푸가’에서 검은 우유는 메타포다. 시처럼 마침표 없이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이다.



김원중의 차례다. 그 사내, 김원중의 노래는 다른 때와 조금 달랐다. 울음 같은 곡들은 겨우 밖으로 나와 노래가 됐고, 힘들게, 아주 힘들게, 노래는 이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노래로 상처를 보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모든 기력을 소진 시킨 뒤에야 비로소 위로가 온다.
김원중은 얼마 전 ‘5·18민중항쟁 30주년 기념음반’을 냈다. 그 노래들이었다. 노래가 하나같이 아프다. ‘꽃을 심으리 그대 가슴에’는 따뜻했지만 그 따스함이 오히려 무거웠다. ‘눈물꽃’은 꽃이 너무 창백해 보여서 아팠다. 정호승의 시에 곡을 입힌 ‘개망초꽃’에 와서는 조금 걱정됐다. 저 노래를 부르다가 김원중이 참았던 눈물을 기어이 터트려 버릴지도 모른다. 눈물 탓에 노래가 중단될지도 모른다. 살면서 이렇게 서늘하고, 저리고, 바닥까지 아픈 노랫말을 만나본 적이 없다.

<죽은 아기를 업고 전철을 타고 들에 나가 불을 놓았다/ 한 마리 들짐승이 되어 논둑마다 쏘다니며 마른풀을 뜯어 모아/ 죽은 아기 위에 불을 놓았다/ 겨울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붉은 산에 해는 걸려 넘어가지 않고/ 멀리서 동네 아이들이 미친년이라고 떠들어 대었다/ 사람들은 왜 무우시래기국 같은 아버지에게 총을 쏘았을까/ 혁명이란 강이나 풀 봄눈 내리는 들판 같은 것이었을까/ 죽은 아기 위에 타오르는 마른풀을 보며/ 내 가랑이처럼 벗고 드러누운 들길을 걸었다/ 전철이 지나간 자리에 피다만 개망초 꽃

다행이다. 그는 울음을 참아냈다. 그리고 ‘춤춘다’를 불렀다. 노래처럼 이제 오월도 춤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내 춤’이었으면 좋겠다. 비는, 밤새, 내렸다

정상철(광주드림 기자)

 
 

[6월공연리뷰] 김원중의 `달거리’ 네 번째 공연을 보고

김원중의 `달거리’ 네 번째 공연 `거짓말’을 보고
`이별이 너무 길다’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세상에 궁극의 위로가 없음을 알지만 때로 사람은 없는 것에 마음을 기댄다. 네 번째 ‘달거리’ 공연의 주제가 ‘거짓말’인 것을 알았을 때, 거기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어떤 빛도 없는 세상에 거짓말만 남아 말이 성을 쌓는다. 사람은 겨우 살아 있어서 많이 무력하다.

 그에게는 위로의 냄새 같은 것이 있다. 그를 처음 만났던 때를 아직 기억한다. 2002년의 어느 거리였다. 사람 많은 어느 도심의 길로 5톤 트럭이 들어왔다. 트럭 짐칸의 문이 열리면 노래가 나왔고, 문이 닫히면 무대는 사라졌다. 트럭 짐칸의 무대 위에서 그는 노래를 불렀다. 그는 전국의 도시들을 돌며 노래에 ‘지역감정 타파’를 담았다. 그 일이 무려 49일 동안이나 계속됐다. 그 때 알았다. 그의 노래는 제 삶이 아닌 전체를 겨냥한다. 제 것을 남에게 내어주는 노래의 ‘마음 씀’은 얼마나 편안한가. 그런 마음이 곧 삶의 위로다.

 21일 광주콘텐츠산업지원센터 영상관이었고, 공연은 오후 7시30분에 잡혀 있었다. 조금 빨리 갔다. 가는 길에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 햇빛 아래 선명한 낮달을 봤다. 달의 걸음이 민심을 닮은 듯 했다. 흐르다가 낮은 곳을 채우고, 너무 높은 곳을 깎아내고, 제 스스로 길을 만들어낼 줄 아는 게 민심이다. 어느 순간 길을 잘못 들어 빙빙 돌아가기도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엔 가야 할 곳으로 간다. 얼마 전에 끝난 선거는 ‘거짓말’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고, 국민은 낮달 같았다.

 김원중이 아주 편한 차림으로 무대에 섰다. 여는 노래는 ‘바위섬’이었다. 80년 오월 고립된 섬 같았던 광주에 대한 노래, 가수 김원중을 세상에 있게 한 노래, 저 위쪽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쪽의 노래, 내게는 가난했던 어린 날의 기억을 가깝게 되살리는 노래, 얼마 만에 들었을까? 10년쯤 전, 시간을 한참 건너오고도 여전히 좋았다.

 이야기손님도 나왔다. 오덕호 목사였는데, 그의 삶은 좀 특별했다. 서울대를 나와 보장된 안정을 버리고 다시 신학을 공부한 사람. 횡단보도가 아니면 길을 건너지 않는 사람, 큰 교회를 관장하지만 소형차에 만족하는 사람. 교회 예산을 신도가 아닌 외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쓸 것을 권하는 사람. ‘선의의 거짓말’에 대해 그가 뭐라더라, “선의의 거짓말도 좋지 않다. 선의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인데, 남을 위한 선의로 포장은 됐지만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다.” 내 삶이 많이 부끄러웠다.

 가장 빛나는 위로는 ‘영화 속 음악찾기’였다. ‘쇼생크탈출’을 본 사람이라면 다 기억할 장면, ‘앤디’가 교도소에 음악을 틀었던 그 순간 모든 게 정지했다. 음악을 듣던 그 순간은 모든 죄수들이 자유였다. 교도소라는 공간은 사라지고 음악과 사람만 거기 있었다. 그 노래는 ‘피가로의 결혼’이다. 앤디는 그 죄로 2주일 동안 독방에 갇혔다. 갑자기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났는데, 그 작품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너무 난해해 누구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평단의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죄수들에게 공연됐을 때 상황이 달라졌다. 폭발적 반응과 함께 눈물의 무대가 됐다. 죄수들이 오지 않을 ‘고도’에 담긴 희망을 읽어낸 것이다.

 마지막 노래는 ‘직녀에게’였다.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그가 부른 모든 노래가 궁극으로 품고 있는 정신이 거기 담겨 있다. 북녘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빵은 너무 긴 이별을 넘어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의 미래였다.


정상철dreams@gjdream.com(광주드림 기자)

 
 

[7월공연리뷰] 김원중의달거리 다섯번째 공연을 보고

‘자귀꽃을 보다 비에 젖는 것을 잊다’



장마다.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폭우의 시간 동안 나는 늘 가라앉아 있었다. 먹구름 사이로 가끔, 정확히 반으로 갈라놓은 것 같은 반달이 창백한 얼굴을 내밀었다. 그 달, 만지면 깨질 것처럼 서늘했다. 이런 달빛의 날에는 음악을 심장으로 삼키는 게 좋다. 음악은 가라앉은 나를 일으키고 삶의 무게들을 조절해 준다.

 그래서 갔다. 다섯 번의 공연 중 네 번째 가는 길이었다. 지난 19일 광주콘텐츠산업지원센터 영상관이었고, 공연은 오후 7시30분에 시작됐다. 김원중의 ‘달거리’ 다섯 번째 공연, 주제가 반달처럼 시를 닮아있었다. ‘자귀꽃을 보다 비에 젖는 것을 잊다’이다.

 김원중은 얼마 전 무등산 꼬막재에서 만난 자귀꽃에 대해 말했다. 비가 왔고, 공작을 닮은 그 꽃이 너무 아름다워 시간가는 줄 몰랐노라고, 그러다가 비가 와서 제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꽃과 눈을 맞추고 있었노라고. 자기가 눈에 담은 대상과 완벽한 합일을 이루는 그런 순간이 흔하게 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대상을 몸의 떨림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만 그런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두 시간에 가까웠던 그 공연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방식을 조금 바꿔 결론부터 말해야겠다. ‘자귀꽃’을 내 안에 품고 공연장을 빠져 나올 때 다시 잠깐 반달과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어떤 시 하나가 떠올랐다. 김원중의 노래가 내겐 무릎에서 번지는 파문 같은 것이었다. 그 시의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저녁에 무릎, 하고/ 부르면 좋아진다/ 당신의 무릎, 나무의 무릎, 시간의 무릎/ 무릎은 몸의 파문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살을 맴도는 자리 같은 것이어서/ 저녁에 무릎을 내려놓으면/ 천근의 희미한 소용돌이가 몸을 돌고 돌아온다// 누군가 내 무릎 위에 잠시 누워 있다가/ 해골이 된 한 마리 소를 끌어안고 잠든 적도 있다/ 누군가의 무릎 한쪽을 잊기 위해서도/ 나는 저녁의 모든 무릎을 향해 눈먼 뼈처럼 바짝 엎드려 있어야 했다> ―김경주 ‘무릎의 문양’ 부분

 사람의 몸에서는 늘 파문이 인다. 감당할 수 있는 파문은 몸이 삼키고, 그렇지 못한 파문들은 무릎을 맴돈다. 몸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이 결국 무릎이고, 사람의 어깨 위에 올려진 삶의 ‘소금 짐’이 무겁다면 무릎에서는 늘 ‘천근의 희미한 소용돌이가 몸을 돌고 돌아’ 올 것이다. 이럴 때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의 무릎에 누워 잠들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19일 저녁 김원중의 노래에 누워 잠시 잠이 들었다.

 사실 김원중이 그 저녁, ‘황토길’을 시작으로 어떤 노래들을 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희원과 주홍의 그림도 마찬가지이며 윤진철의 ‘심청가’도 다르지 않다. 그것들을 보고 들으며 자기 안에서 어떤 울림들을 만났느냐가 중요한데, 그 공연을 직접 보면 이 모든 것들에게서 몸의 떨림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시인이고 가수이며 작곡가인 백창우에 대해서는 언급해야겠다. 처음 만나는 그는 낮은 목소리로 노래했고, 객석에 몇몇 꽃잎처럼 박혀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작곡한 동요들을 불렀다. 원래 부르고자 했던 노래는 분명 그 노래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마음 씀’이 달빛 같았다.

 다섯 번째 공연이 끝났다. 지금껏 모아진 돈은 780만900원이다. 5000원이면 빵 30개를 만들 수 있고, 저 돈이면 북한의 어린이들에게 4만6805개의 빵을 건네줄 수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숫자인가. 다음 공연은 8월16일이다.

정상철 dreams@gjdream.com(광주드림 기자)

 
 

[8월공연리뷰] 김원중의 ‘달거리’ 여섯 번째 공연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비가 내렸다
김원중의 ‘달거리’ 여섯 번째 공연

공교롭다. 그날은 칠월칠석이었다.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의 몸을 밟고 은하수를 건너는 날, 낮부터 비가 왔다. 만날 땐 기뻐서, 헤어질 땐 1년에 꼭 하루뿐인 그 시간이 너무 아득한 슬픔이어서 은하수를 밟고 건너온 두 남녀가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비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비를 몸으로 다 받아내면 몸이 휘청일 폭우였다.

그러나 칠월칠석은 그 공연에서 다만 우연의 은유일 뿐이다. 만나야 할 것은 서늘한 전설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 그러니까 갈라진 장벽 아래 놓여있는 ‘우리’였다. 남과 북은 같은 몸에서 나와 오랫동안 팔과 다리가 분리돼 있다. 그날 공연의 마지막, 김원중이 ‘직녀에게’를 불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전히 거기 갔고, 나는 여섯 번째 공연을 몸으로 들어야만 했다. 16일, 8월의 세 번째 월요일은 다른 어떤 달의 시간보다 빨리 우리에게로 왔다. 광주콘텐츠산업지원센터 영상관이었고, 공연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오후 7시30분에 시작됐다. 김원중의 ‘달거리’ 여섯 번째 공연, 주제가 힘차서 많이 아팠다. ‘열정’, 김원중의 입을 통해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왜였을까? 갑자기 안도현의 시 짧은 하나가 떠올랐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전문) 안도현을 만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를 처음 만났던 때 열아홉이었으니, 20년쯤 전이다. 전주의 허름한 포장마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도현 시인과 소주를 여러 병 마셨다. 사실은 먹지도 못하는 ‘꼼장어’ 한 접시 옆으로 빈 술병만 자꾸 늘어났고, 밤은 깊었다. 은근히 빈 주머니가 걱정될 무렵 안도현이 “오늘 원고료 받았다”며 호기를 부렸다. 그의 경제력을 감안하면 술값이 상당했다. 그는 그 때 돈 못 버는 시인이었고, 해직교사로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던 시절이었다. 아프다. 나는 한 번도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인 적이 없었고, 그러므로 ‘열정’이란 말을 마음에 품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에야 겨우 열정 비슷한 걸 혼자 가졌을 뿐이다.

어쨌거나 공연은 시작됐다. 윤진철의 ‘소리마실’로부터 그 공연에 대해 기록해야겠다. 윤진철이 제 공연에 대해 뽑은 작은 주제는 ‘별주부 세상에 나오다’였다. 용왕을 살리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로 나온 별주부, 그것은 일종의 형벌이었고, 신념이었다. 세상엔 상반의 것을 같이 품을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들이 있다. 윤진철의 소리가 다른 어느 때보다 깊어 보였고, 객석의 넋을 단 한 번의 소리로 가져가 버린 건 아마도 그 관계를 한의 소리로 깊게 짚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김원중의 노래에 이런 게 있다. ‘나는 바이크 타고 시베리아에 간다’. 노래는 김원중과 늘 원효사 계곡을 같이 걷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탐험가 김현국, 두려울 게 없을 것 같은 사람.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늘 심장이 작아지는 사람. 시베리아를 바이크로 횡단한 그 사람. 사실 나는 늘 그 노래가 듣고 싶었다. 처음으로 그 김원중이 ‘달거리’에서 그 노래를 불렀다. 몸의 떨림이 정수리에서 횡경막을 거쳐 발끝에 닿았다. 삶은 ‘아이러니’다. 단 한 번도 김원중의 공연에 빠진 적이 없고, 늦게 도착한 적도 없는 김현국은 그 저녁 김원중이 ‘나는 바이크 타고 시베리아에 간다’를 부를 때 거기 없었다. 둘 사이의 깊이를 알기에 잠깐 내 심장이 칼로 베이는 듯 아팠다.

이제 그날 공연의 묘한 정점이 됐던 한 객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안치환이다. 난 그의 노래 ‘자유’를 사상의 거처로 삼았던 적이 있다. 90년대가 아름답게 흐르고 있던 시절, 아직은 적과 동지의 구분이 모호하지 않을 때 안치환의 노래 ‘자유’는 내게 혁명이었다. 나는 지금 자주 그 시절이 그립다. 정말 많이 그립다. 나는 안치환의 노래를 오랜만에 들으며 이젠 늙어버린 혁명을 봤다. 많이 슬펐다.

정상철(광주드림 기자)

 
 

[11월공연리뷰] 김원중의 ‘달거리’ 아홉 번째

기우는 달도 오래 빛난다
김원중의 ‘달거리’ 아홉 번째 공연

달은 차면 기운다. 공연은 아홉 번 이어졌다. 모두 열 번의 공연이니, 달로 치면 이제 손톱만큼 남아있는 셈이다. 눈으로 보이는 건 손톱 만큼이지만 여전히 달빛은 지상으로 내려오고 밝다. 달은 누구를 위해 밝은가? 역으로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김원중의 노래는 어떻게 달빛이 되는가?

지난 15일 광주콘텐츠산업지원센터 영상관에서 김원중의 ‘달거리’ 아홉 번째 공연이 열렸다. 오후 7시30분, 공연은 시작됐다. 주제가 깊다. ‘11월은 모두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었다. 가을의 끝자락, 전부가 소멸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그 시간 안에서 숨 쉬었던 모든 것들은 삶의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달거리’ 공연도 다르지 않다. 이제 꼭 한 번의 공연이면 끝을 맺지만 ‘빵’을 남겼다. 지난 8번의 공연으로 1052만8900원이 모아졌다. 5000원이면 북한의 어린이들에게 빵 30개를 만들어줄 수 있고, 그 돈이면 무려 6만3173개의 빵을 만들 수 있다. 달거리 공연으로 향하는 모든 달빛은 그 빵을 비춘다.

공연을 여는 노래가 뭐였더라? ‘가을이 빨간 이유’였다. 여는 노래를 마치고 아홉 번째 공연의 주제를 설명하며 김원중이 그랬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 다만 지나갈 뿐이다”고. 말이 단순하지 않아 한 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떤 사람도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은 없다. 모두 빈손이다. 그러므로 잠깐 지나가는 삶 안에서 무엇이건 나누며 살 일이다. 결국 김원중의 말은 삶의 자세에 닿아 있었다.

윤진철의 ‘소리마실’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공연을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 소리꾼은 늘 재미있다. 유머가 살아있고, 사람들과 함께 섞일 줄 안다. 편안하다. 근데 목이 소리의 길에 접어들면 사람이 변한다. 이번 소리의 주제는 ‘천륜-그리움’이었고, 황후가 된 심청이가 심봉사를 그리워하는 대목이었다. 심봉사가 심청이를 그리워하는 대목도 그의 목으로 연주됐다. 뭐랄까, 찢어질 듯 이어지는 그의 소리가 몸에 소름을 돋게 했다. 소리에 담긴 그리움의 깊이가 너무 깊어 객석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추임새’를 넣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소리에 모두 넋을 놓은 탓이다.

한희원의 그림은 여전히 빛났고, 주홍의 핑거페인팅 역시 마술 같은 세상을 열었다. 그 공연에서 좋은 소식이 하나 더 발표됐다. 전시 소식이었다. ‘달거리’ 9.5회쯤 되는 공연과 전시가 12월2일 무돌아트갤러리에서 시작된다. 12월9일까지 진행된다. ‘달거리’를 위해 그렸던 한희원의 그림이 주가 되고, 함께 참여했던 주홍과 윤진철의 그림 작품이 더해졌다. 김원중은 아끼던 물건 몇 점을 내놨다. 그리고 12월2일 오후7시에는 전시 개막을 기념하는 공연이 열린다. 또 다른 달거리 공연이 장소를 바꿔 진행되는 셈이다.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다. 그 공연의 초대 손님은 김두관 경남도지사였다. 그는 오지 못했다. 그 날 경남도에 대한 4대강 사업권 회수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모두 아쉬워했다. 마을 이장(里長)으로 시작해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던 사람. 남해신문 발행인이었고, 1995년 37세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자치단체장에 당선된 사람.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평안하지 않았다. 2002년 지역주의에 맞서기 위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2006년에는 열린 우리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경남도지사 후보로 재출마해 역시 실패했다. 이 나라에서 지역주의는 늘 무섭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극복했다. 경남도지사 선거 세 번째 도전 끝에 올해 당선됐다.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2003년이었고, 공교롭게도 그를 만난 곳이 광주콘텐츠산업지원센터였다. 그 때 그가 한 말을 아직 기억한다. 옮긴다. “정치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인들의 기득권이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많이 써서 당선되는 정치인들이 많다. 권력을 가지는 순간 기득권의 노예가 된다. 기득권 포기 없이 우리 정치는 희망을 노래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그에게 개혁은 기득권 포기와 이음동의어였고, 그는 삶으로 개혁의 소신을 지켜왔다.

묘하게 김원중의 삶도 그와 닮았다. 가질 수 있었고, 누릴 수 있었던 중앙의 노래 기득권을 버리고 그가 광주에서 사는 이유, 달거리 공연을 하는 이유, 그 안에 ‘개혁’ 잠들어 있다. 나는 9번째 공연에서 그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2010.11.19 정상철(광주드림 기자)

 
 

[12월공연리뷰]‘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김원중의 ‘달거리’ 10번째 공연을 보고

공연이 끝났다. 사람들이 돌아갔다. 5년 만에 다시 열린 ‘달거리’ 공연이 끝나던 날, 공교롭게도 우리 군은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을 했다. 포신이 향했던 곳은 이쪽의 바다였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기어이 포신을 겨눴던 곳은 저쪽의 심장이었다. 포탄이 떨어진 곳에 한 번 건너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강이 생겼다.

‘달거리’의 마지막 공연이 20일 오후 7시30분 광주콘텐츠산업지원센터 영상관에서 열렸다. 주제는 ‘한 걸음만 더’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 걸음만 더’ 다가갔으면 죽지 않아도 될 목숨들이 죽었다. 마지막 노래로 조금만 더 서로 가까워지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남쪽의 힘없는 한 가수가 오직 제 노래로 무릎의 파문을 감당하며 걸어왔던 시간이 무색해졌다. ‘달거리’ 공연으로 만들어진 돈은 아직 빵이 되지 못했다. 빵으로 남과 북, 그 갈라진 은하수를 건너려 했던 마음은 무산됐다. ‘가슴 딛고’ 만나야 할 신념 대신 호전적 구호들만 ‘보복’의 이름으로 거리를 쏘다녔다.



공연을 끝낸 가수 김원중의 얼굴이 많이 어두웠다. 2010년 3월, 5년 만에 다시 공연을 시작했을 때 성대 결절이 왔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9번의 공연이 더 남아있었다.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노래로 평화를 밀어올리고, 남쪽 안에 북으로 향하는 길을 열고 싶었다. 공연 때마다 늘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치명적 손상을 마음으로 버텨냈다. 그는 기어이 끝을 맺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이 무색해졌다. 그 사이 연평도로 포탄이 날아왔고, 포탄이 날아갔다.

마지막 공연이니 그 공연의 함께 했던 사람들을 호명해야겠다. 한희원, 무대의 배경이 된 그의 그림은 백석의 시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한’ 깊이를 가졌다. 주홍의 손이 모래 위를 지나갈 때 나는 한 번 들어가면 돌아 나올 수 없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피어난 꽃을 보았다. 윤진철 그의 소리에서는 전율을 넘어선 공포를 느꼈다. 김현옥의 생일 노래 변주들에서는 착한 아이의 웃음 같은 해맑음이 느껴졌다. 음악이 비갠 후 불어오는 바람 같았다. 모두에게 고마웠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의 부제는 ‘빵 만드는 공연’이었다. 빵은 절박한 사랑이었다. 남쪽에 쌀이 남아돌고, 넘치는 음식물이 쓰레기로 변하는 동안 북쪽에서는 아이들이 몇 달을 굶다가 죽어나갔다. 그 빵 하나면 북쪽 아이 한 명의 하루치 식량이 되고, 공연을 한 번 진행하면 몇 천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누구인들 가만히 앉아 바로 저 건너 아이들의 죽음을 모른 척 할 수 있었겠는가? 하물며 그는 걸어가는 길에 눈에 밟히는 게 너무 많은 사람이다. 노래가 밟혔고, 지역이 밟혔고, 함께 걷는 사람이 밟혔다. 굶어 죽기 직전인 북쪽 아이의 사진 앞에서 그는 밥조차 삼키지 못했을 것이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마지막 공연의 마지막 노래는 ‘직녀에게’였다. 다른 선곡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별은 끝나야 하고, 우리는 만나야 한다. 사실 북한의 연평도 폭격은 같지만 전혀 다른 두 나라 수장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이다. 권력들의 완강한 단절 안에서 은하수가 닫혔고, 전면전의 위협이 세상을 덮고 있다.

올해 달거리 공연은 10번 열렸다.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 많은 돈이 모금됐다. 그러나 모인 돈은 여전히 남쪽의 통장에서 썩고 있다. 이 나라의 정부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전달되지 못한 빵만큼 북한의 어린이들은 굶고 있다.

개인의 진심이 무시될 만큼 남과 북의 관계는 지금 많이 경색돼 있다. 어렵게 공연을 진행했지만 진심의 노래가 권력의 야욕을 넘지 못했다. 마지막 공연을 끝낸 김원중의 얼굴이 많이 어두웠던 건 아마도 돈이 빵으로 전환되지 못한 현실이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형, 힘내.”

어느 늦은 오후, 김원중이 내게 말했다. “내게 음악은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다. 노래를 부르는 일 자체가 좋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는다.” 이제 당신이 김원중에게 힘을 줄 차례다.

2010,12.24 정상철/광주드림기자

 
 

[12월공연리뷰] 다채로운 문화를 융합하는 힘
--“빵 만드는 공연 · 김원중 달거리” 공연에 관한 단상

사계절 저녁노을 속에 길들여지는 평온한 시간 환한 불 켜 놓은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매달 귀에 익도록 하고 마음에 젖어들도록 울려준 음악을 편안하게 받기만 했습니다. 활기찬 현장엔 ‘김원중의 달거리’를 의미 있게 만드는 관심과 사랑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일상에 평화롭고 기쁜 마음이 언제나 깃들도록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해준 공연 마지막에 감사한 마음으로 몇 가지 단상을 남깁니다.



공연은 다달이 초대의 글로 시작되었습니다. 매회 달라지는 공연 주제는 진실을 툭 건드리는 듯 작지만 무심한 일상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작은 스토리가 큰 힘을 낳은 것은 자신의 마인드를 세팅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일까요? 좋은 비평의 눈으로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전해온 글은 일상을 벗어나서 의식의 지평도 넓혀주었습니다.

꿈의 빈곤으로 시달리는 일상 속에서 나를 일깨워 작은 사물들을 다시 보게 하고 마치 ‘자신에게 다정 하라’고 일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새싹, 맑은 시냇물, 수밀도, 자귀꽃, 달, 바람 등 자연의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매달 다른 초대의 글은 문화란 말을 써서 계몽하지 않아도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라는 개념을 넓혀 준 것입니다. 우리라는 컨셉트는 ‘감정적 교류’ 암묵적 상태의 ‘감정 이미지네이션’ 과정으로, 새로운 초대 손님을 만나고, 어느 나라의 영화 속 음악을 듣고 보면서 삶을 미적으로 바꿔가는 창작자와 공감하는 향수자를 하나로 묶어내는 다양한 노력입니다.

예술에 대한 정의야 어떻든 예술가에게는 자질보다도 ‘주의력’을 많이 가져야 함을 확인합니다.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그래서 삶을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창의성입니다. 삶의 질을 향상하는 삶을 채우는 활기찬 예술현장이 많은 곳이 창의적인 사회라고 했습니다.

또한 달거리 공연을 통하여 시대의 문화가 어떻게 융합해 나가는지 확인한 것입니다. 다채로운 영상, 가요, 애니메이션, 국악, 클래식 등 서로 다른 장르가 통합하여 또 다른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을 본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가 지역중심의 관점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것은 지역의 정체성 찾기에 화두가 될 만합니다.

달거리 공연은 세련된 무대로 고급예술이나 대중예술 이런 영역의 구분이나 고급과 저급 같은 분리를 떨쳐버렸으며, 그간 분리된 감각들을 통합하는 행복한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달거리 공연의 전문성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창조의 재해석으로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습니다. 자기영역이 아닌 자기 밖의 전문가를 불러들이는 것, 이미 알려져 있는 영역의 가치화뿐 아니라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가치화하는 것 그것이 ‘전문성’입니다. 요즘처럼 변화가 많은 시대에 주류가치 지표를 따라갈 것인가 다른 가치를 찾고 다채로운 나를 만들어갈 것인가? 새로운 선택은 함께 좋은 문화와 공연을 만들어낸 활기찬 예술가들의 몰입과 보다 깊은 ‘신뢰’에 의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능하도록 해준 것 같습니다.

온몸으로 진땀나게 공연해온 모습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5·18을 경험한 광주에서, 무수한 삶의 현장에서,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서 인간의 진실을 끈질기게 파헤쳐온 여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맘 편히 하시고 푹 쉬시길 당부 드립니다.

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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